[이규태코너] 제주 말축제
제주도에 유배살이했던 선비 김정(金淨)이 제주도 조랑말이 집단으로 정연하게 보조를 맞추어 땅을 다지는 것을 보고 ‘조선 사람이 저 제주말만 같았더라면ㅡ’ 하고 그 집단질서를 부러워하는 글을 남겼다.
고대 한국의 기록에 키 작은 과하마(果下馬)가 나오는데 그 혈통을 이어받고 있는 것이 제주도 조랑말이다. 이 조랑말 타고 금강산 유람을 했던 영국의 할머니 탐험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조랑말 찬(讚)을 들어보자.
‘소인국의 말 같지만 그 강인한 내핍성과 끈기와 운송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먹이라고는 지푸라기 썬 여물이 고작인데 200파운드가 넘는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 30마일을 걸어내고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서양말 같으면 덩치만 컸을 뿐 몇십 번 주저앉았을 돌길이며 무릎까지 빠지는 수렁길이며 구불구불한 산길을 같은 속도로 걸어내는데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고 했다. 평지의 수평이동에는 서양말을 따르지 못하지만 산지의 수직이동에는 서양말이 조랑말을 따를 수 없으며, 온 국토의 80%가 산지인 한반도에서 적자생존으로 명맥을 이어내린 제주말이다.
어려운 역사적 여건을 지탱해온 제주말은 한국인이다. 몽골의 한반도 침략에 제주도까지 후퇴하며 저항했던 삼별초ㅡ그를 뒤쫓아온 몽골 침략자들이 제주도의 광활한 목초지를 보고 군마(軍馬) 목장으로 눈독을 들였다.
몽골 말을 방목하고 그들 죄인을 유배 겸 목자(牧者)로 제주도에 이주시켰다. 성질이 사나웠던 이 오랑캐 목자(牧胡)들이 작당, 제주 목사 순문사를 살해하고 군사령관이랄 제주 만호를 죽이는 반란을 자주 일으켜왔으며 조정의 친원파(親元派)와 결탁, 주체노선을 밟으려는 공민왕의 암살을 음모하기도 했다.
그후 고려 공녀(貢女) 출신인 원나라 기황후(奇皇后)가 그녀의 친정을 위해 제주도에 몽골 말을 대거 방목했다. 이 기황후 말의 혈통에 ‘王’자를 낙인하여 순수혈통을 지켜 값을 비싸게 불렀으며 그 씨받이에만도 조와 수수 몇 섬씩을 받는 수탈을 했다.
조선조에 들어 여러 차례 투입된 몽골의 외래 혈통은 전통 순수 혈통과 혼혈, 결국은 조랑말에 수렴당하고 말았다. 외래 사대(事大)문화에 대처하는 주체성의 존재방식에 바람직한 수범을 보인 제주말이요, 엊그제 열렸던 다양한 제주말 축제는 그 과시였다는 데 뜻을 두고 싶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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