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쓰레기 고고학

bindol 2022. 10. 30. 16:16

[이규태코너] 쓰레기 고고학

조선일보
입력 2003.10.07 15:52
 
 
 
 

광화문전 육조(六曹)거리의 동쪽 뒤꼍을 흐르는 청계천 상류에 혜정교라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태종실록 13년 기사에 보면 아이 넷이 이 다리 위에서 전통 골프랄 수 있는 타구(打毬)를 치고노는데 치는 공마다 하나는 태종, 하나는 효령군(孝寧君), 하나는 충녕군(忠寧君) 하는 식으로 왕족의 이름을 붙여 치는 것이었다.

그중 친 공이 혜정교 다리 밑에 빠지자 한 아이가 효령군이 물에 빠졌다고 외치는 것을 때마침 그 다리를 지나가던 효령군의 유모가 듣고 효령군의 장인인 대사헌 벼슬의 정역(鄭易)에게 고했고, 정은 이를 형조에 고발, 아이들을 잡아 가두고 요언률(妖言律)로 다스리려 했다. 이에 너그러웠던 태종은 이 아이들이 겨우 열 살에 불과하다는 것을 들어 요언률로 다스리지 말라 하고 없던 일로 처리했었다.

왕정에 대한 백성의 공감대가 동요(童謠)나 요언(妖言)을 타고 번지듯이 당시 아이들 놀이인 타구를 타고 번지기도 했던 것 같다. 타구의 공은 단단한 박달나무나 대추나무를 깎아 만들지만 잘사는 집 아이들의 그것은 옥돌의 일종인 마뇌로 만들었다. 보도된 바로는 청계천 복원공사의 일원으로 청계천 다리 밑등의 퇴적층 유물조사를 시작했다 하니 행여 이 타구공처럼 역사에 기록된 채 잊힌 유물들이 나타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청계천은 600년 동안 도읍의 복판을 흘렀기에 숱한 사연을 담은 유물들이 퇴적층에 묻혀 있을 수 있을 것이며, 이것으로 당시 사회상 생활상을 복원하는 쓰레기 고고학 탐사가 시작된 셈이다. 비단 생활유물뿐 아니라 민속유물 출토도 기대된다.

대보름날 광통교의 다리밟기는 남녀의 데이트가 공인된 시공(時空)으로 이날 밤 난봉꾼의 상투 동곳과 기녀(妓女)의 허리춤 노리개를 한데 묶어 다리 밑에 던지는 것으로 사랑을 약속했었다. 아마도 이 애정문화재가 광통교 수표교 다리 밑 퇴적층에서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 대보름날 그 해에 불행을 예언하는 직성이 든 아이는 짚 인형인 제웅을 만들어 엽전 한 닢 넣어 길가에 던져 불행을 파는데, 한양에서는 거지들이 사는 개천 다리 밑으로 가 버리는 관행이 있었다. 이 제웅 엽전들도 청계천 다리 밑에서 출토될지 모를 일이다. 그 쓰레기 고고학으로 잊힌 많은 민속문화가 되살아날 것을 기대해본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