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柳京 체육관

bindol 2022. 10. 30. 16:17

[이규태코너] 柳京 체육관

조선일보
입력 2003.10.06 16:44
 
 
 
 

어제 분단 후 1100명이라는 가장 많은 남한 사람이 육로로 평양에 들어갔다. 고 정주영씨가 세워준 평양의 체육관 개관잔치에 참석하기 위함이다. 평양 보통강변에 세워진 이 체육관은 1만2300석으로 정식 이름은 ‘유경(柳京) 정주영체육관’이다.

이 호칭에서 낯선 것은 유경이다. 이미 체육관 곁에 서 있는 호텔 이름도 유경이요, 베이징(北京)에 진출한 북한 업체들에도 유경이란 이름이 선호돼왔다.

중국 사신 예겸(倪謙)이 읊었듯이 ‘언덕을 넘으면/모두가 평평한 땅 평양(平壤)이라/고을 이름도 아늑하고 좋아라’ 했듯이 평평해서 평양인 이 고을의 옛 지명으로 기자(箕子)가 나라를 세웠다 하여 기성(箕城) 낙랑(樂浪) 장안(長安) 등의 이름이 있었고 한양을 중심으로 동쪽에 서쪽에 있다 하여 평양을 서경(西京)이라기도 했다.

옛시에는 호경(鎬京)으로 자주 나오는데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 때 서경(西京)의 고을 이름이 호경이었던 데서 이를 본뜬 평양의 사대(事大) 지명인 것이다.

유경은 흔히 쓰지 않았던 평양의 이명인데 ‘평양지(平壤志)’에 그 연유가 나온다. ‘평양에 도읍한 기자(箕子)가 산천이 순탄하지 못하고 풍속이 억센 것을 보고 버들가지처럼 부드럽고 유연해지길 바라는 뜻에서 모든 민가에 버들을 심게 하였고 그래서 평양에는 버드나무가 많아 버들의 도읍이란 유경으로 일컫게 됐다 하고 지금도 서변(西邊)에는 버드나무가 많다’ 했다. 서변은 평안도를 통칭하는것이다.

 

조선조 성종 때 학자 성현(成俔)이 평양에 가 읊기를 ‘성의 외길이 숫돌처럼 반듯한데/양길 옆의 수양버들이 십리나 뻗었네/한들한들 황금 같은 만 올(縷)의 버들가지가/봄바람에 길 떠나는 사람을 잡지(繫) 못하네’ 했다.

평양에 이처럼 버들이 많은 것은 세종 때 최윤덕(崔潤德)이 고을살이를 할 때 수만 그루를 심어 물난리를 막았고 영조 때 속칭 식목(植木)대감으로 불리는 홍양호(洪良浩)가 강물의 범람을 막고자 뚝을 쌓고 버들을 심었다기도 한다.

평양의 도시풍수를 떠나가는 배, 곧 행주형(行舟型)이라 하여 주민들에게 샘을 파지 못하게 했을 만큼 물이 풍부한 땅이었기에 버들이 자생 번식하는 데 적성의 토질이요, 그래서 유경이라는 아명(雅名)을 얻었을 것이다. 체제의 모서리도 유연해지길 바라는 소망의 아명이기도 한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