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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되살려낸 공후

bindol 2022. 11. 2. 05:59

[이규태코너] 되살려낸 공후

조선일보
입력 2003.07.15 18:53 | 수정 2003.07.15 21:09
 
 
 
 

크고 작은 수백 악기가 모인 관현악에서 가장 큰 악기가 하프다.

가장 크기도 하려니와 가장 오래된 악기이기도 하다. 기원전 3000년 수메르 문명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원에 대해 이런 이야기가 전해내렸다.

미모의 동생을 질투한 언니가 깊은 나일강 물에 빠트려 죽였다. 이 억울하게 죽은 미소녀의 앞가슴뼈가 하프의 틀이 되고, 미소녀의 머리카락이 현(絃)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한 줄을 튕기기만 해도 나는 소리가 슬픈 것은 한 품은 미소녀의 사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양의 하프인 공후( )의 사연도 슬프기는 매 한가지다. 고조선시대에 조선진(朝鮮津)에 백수의 미친 지아비가 머리를 풀고 술병을 든 채 물에 빠져 드는 것을 그의 아내가 뒤쫓아와 말리려 했으나 미치지 못해 빠져 죽고 말았다.

이에 아내는 공후를 타며 통곡하기를 「물을 건너지 말아요/건너다가 물에 빠지면 /당신은 어떠 하시렵니까」고 슬피 울면서 뒤따라 물에 빠져 죽었다. 이를 지켜본 뱃사공 곽리자고( 里子高)가 집에 돌아와 아내 여옥(麗玉)에게 전하자 여옥이 다감했던지 이로써 노래를 지은 것이 「공후인( 引)」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가 돼 있다. 동서의 기원 설화가 비슷한 것은 공후의 음색이 인간의 비감(悲感)과 공명(共鳴)을 잘한 때문일 것이다.

 

중국 문헌들에 보면 공후는 서역에서 나온 오랑캐 악기로 한나라 영제(靈帝)는 호복을 입고 호장(胡裝) 여인으로 하여금 호악(胡樂)인 공후를 즐겼다 했다. 인도에도 흘러들었던지 불경인 「지장경(智藏經)」에 이승과 저승의 중간계를 공후의 음색에 비유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승 저승의 한계가 모호해진다던 오대산 상원사의 범종 종벽에 공후가 새겨져 있음은 한국 정신세계에서의 공후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유럽에서도 사후에 영혼을 인도하는 음악이요, 천국에 오르는 소리 계단이라 하여 하프를 부장(副葬)하는 관행마저 있었다.

일본에 건너가 백제금(百濟琴)으로 왕실에서 연주되었고,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가 단절된 이 공후를 고악기 연구회가 복원하여 연주회를 가진 것은 복원보다 옛것 죽이기 풍조에서 옛것 되찾아 현대화하려는 정신이 신선하게 와닿는다.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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