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임금 피크制
노인을 버리던 옛적, 중국의 천자가 조선 임금에게 어려운 문제를 냈다. 아홉 굽이 곡절로 구멍이 뚫린 구슬에 실을 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난문이었다. 임금은 고민 끝에 팔도에 방을 붙여 해답을 구했다. 한 효성 깊은 백성이 아버지를 버리지 못하고 땅굴에 숨겨놓았는데 몰래 찾아가 물었다. 개미허리에 실을 묶고 구슬 구멍에 꿀을 흘려놓으면 개미가 꿀을 따라 들어가 실이 꿰진다 했다. 이로써 임금은 노지(老智)의 소중함을 절감하고 노인 버리는 것을 그때부터 금했다 한다. 늙을수록 체험과 지혜의 축적은 고금이 다를 것 없는데, 마냥 정년을 내리고 40대 실업자를 양산시켜 지적 자원 소모를 가속시켜 왔다.
밀레의 명화 ‘이삭 줍기’는 노인과 미망인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만 이삭 줍기라는 일을 제한시켰던 노인 직업보장의 명품이기도 하다. 독일에서는 단골 집배원이 일하고 싶은 노인과 일자리를 연결해 주는 다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미국에는 사회시설·공공시설·환경시설에는 노인 아니면 취업 못하는 그랜드 페어런트 계획이 철저하고, 싱가포르에서는 일정 연령에 이르지 않으면 포장마차 영업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푸드터부라 하여 노인 아닌 자가 먹으면 병이 나고 불행을 초래한다는 금기음식이 정해져 있어 노인 식량을 보장하는 나라도 많다. 부시맨은 사슴·토끼·거북이는 노인 아니고는 먹지 못하게 돼 있고, 볼리비아 인디언은 노인이 아닌데도 짐승의 머리고기를 먹으면 머리가 희어지고 다리를 먹으면 주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았다. 마을에서 추렴으로 돼지를 잡으면 그 내장은 마을의 60세 이상 노인 몫으로 나누어 드리는 우리나라 배장(配臟)문화도 푸드터부랄 수 있다.
우리 전통사회에는 70치사(致仕)라 하여 정년이 되거나 정년 이전에도 벼슬을 낮추어 말미를 적게 받는 임금 피크제가 있었다. 벼슬 품수를 3품 내려 정년을 연장하는 노인직(老人職), 그리고 체아직( 兒職)이라 하여 병이나 상(喪)을 입거나 사고·부정부패 등으로 생기는 결원을 메우는 노인 대기제도가 그것이다. 치사 후 향직(鄕職)이라 하여 고향에서 모셔가 연장시키기도 했다. 국내 금융기관에서 58세 정년을 보장하되 55세부터 임금을 깎고 보직을 변경하여 지적 자원의 유실을 막는 임금 피크제가 도입됐다 하여 그 내력을 살펴보았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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