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金蘭契

bindol 2022. 11. 2. 06:04

[이규태 코너] 金蘭契

조선일보
입력 2003.06.22 18:57
 
 
 
 

동해안 금강산에서 해안을 따라 경주 토함산까지 내려오노라면
금란현(金蘭縣) 금란굴(金蘭窟) 금란리(金蘭里) 후금란(後金蘭)
금란치(金蘭峙) 금란산(金蘭山) 등 금란이라는 지명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옛 문헌에 신라 화랑들의 원유지(遠遊地)를 금란이라고 했음을
미루어 신라나 그 이전 젊은이들의 집회소와 연관이 있는 곳들일 확률이
높다. 금란은 역경(易經)에 나오는 말로, 한 마음 갖기로 한 다짐의
굳기가 금보다 강하고 아름답기가 난보다 향기롭다는 결의(結意)의
미사(美辭)다. 지금은 약속을 법률로 얽어매지만 옛날에는 약속사항들을
돌에 새겨 산봉우리에 묻거나 바위나 산 위에 올라 하늘에 서약하는
서천(誓天)의 의식을 베풀어 보증했다. 금란의식의 현장으로 경주
금장대(金丈臺)를 들 수 있다. 이 정상에서 신라 젊은이 둘이서 하늘에
서약하고 묻은 널따란 돌이 발굴되었는데, 국가가 외침을 당하면
죽음으로 충도를 다하고 3년 안에
시(詩)·상서(尙書)·예기(禮記)·전(傳)을 익힐 것을 하늘에 약속하고
있다. 울주 태화강 상류에서 발견된 서석암(誓石岩)도 약속을 하늘에
보증하는 성스러운 의식의 현장으로 고증되고 있다.

이미 삼한시대부터 기록에 나오는 미성년들의 집회소인 멘스 하우스는
작게는 촌락, 크게는 국토를 지키고 공공봉사를 하는 금녀(禁女)의
결사(結社)로 가혹한 가입의식을 치르는 신라 화랑의 전신이기도 하다.
이 멘스 하우스에서는 심신단련을 위해 동해안으로 원정훈련을 했으며,
그 원유지마다 금란을 다지는 의식을 베풀었고, 그 의식의 현장에
금란이란 지명이 남아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배신과 사기가
일상화하고 믿음이 증발한 요즈음 세상에 되살리고 싶은 금란사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사상의 고장인 동해안 삼척 무릉계곡의 금란정(金蘭亭)에서 일전에
역사도 유구한 금란사상을 오늘에 뿌리내리려는 모임이 있었다. 이 고을
선비들이 이곳에 숨쉬는 옛 정신을 기려 금란계(金蘭契)를 맺은 지 100년
맞이 행사를 베푼 것이다. 1903년 기우는 국운을 금란 동심(同心)으로
버티자고 계를 맺고 한말 군대해산으로 확산된 영동 의병운동의 온상이
되기도 했던 한국정신사 최후의 보루였다. 꺼져가는 정신문화의
씨불이라도 보는 것 같은 감회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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