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아까시 동산
아까시 꽃철에 서울~부산 간을 기차로 달리면서 놀라웠던 것은 이
아까시나무 꽃이 한반도를 간단없이 뒤덮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도 아니요, 남산에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 동산도 아닌 아까시 동산이다. 아까시를 아카시아로 썼다가
식물학자들에게 호통 맞기를 여러 번 했는데 아카시아는 아열대
이남에서만 자라는 열대작물로 그 식생 상한이 대만(臺灣)이며,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는 아까시는 유사(類似)아카시아 가짜 아카시아로도
불리는 별종이다. 이 아까시가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프랑스·영국·일본 등지에서도 아카시아로 불리고 있고 불려온 것이다.
아카시아는 고대 이집트나 구약성서 지방에서는 불사의 상징으로,
지금도 사람을 매장할 때 이 아카시아 나뭇가지를 꺾어 묻는 관습이 있다
한다. 신전의 제단이나 모세의 십계(十戒)를 새긴 돌을 담는 그릇 등
신성한 그릇들은 아카시아 나무로 만든다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머리에 쓴 수난의 가시나무 관(冠)도 이 나무일 것이라는 설이 있다.
순박하여 서로를 바라보지도 못하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아까시 꽃 꺾어
바치는 것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했으니 꽃이 갖는 상징도 아카시아와
아까시는 판이하게 다르다.
번식력이 너무 강하여 다른 식생을 방해하고 온 국토를 뒤덮어놓고 만
아까시의 한국 도래에 대해서도 이설이 있다. 1890년대에 인천의 한 일본
우선(郵船)회사 지점장이 상하이에서 묘목을 구해다 인천 월미도에
심었다는 설이 있고, 한말 독일 총영사 크루거씨가 중국 산둥반도의
독일령 칭다오에 아까시를 많이 심었더니 식생이 왕성하다 하여 이를
들여다 심을 것을 당시 조선총독인 데라우치(寺內正毅)에게 건의하여
들여왔다는 설이 있다.
한말에 한국에 와 불어학교교장을 역임한 프랑스인 에밀 마텔의
회고록에 데라우치가 아까시 나무를 들여온다 하여 찾아가, 혹시
철도공사를 위해 헐벗은 땅에 속성수로 심는다면 몰라도 산이나 들에
심으면 다른 식생을 방해하여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하고, 만류했다고 했다. 이렇게 들여온 최초의 아까시를 용산 병영인근에
처음으로 심었다 했다. 그것이 100여년 만에 한반도를 아까시 동산으로
만들었으니 에밀 마텔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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