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사스 報復論
불교의 영향으로 조상들 짐승에게 가해하거나 살생을 하면 반드시
보복받는다는 업보(業報)사상에 투철했다. 태종11년에 처음으로 들여온
코끼리를 사복시(司僕寺)에서 길렀는데 이를 구경하던 공조(工曹)의 한
벼슬아치가 추하게 생겼다고 침을 뱉자 코끼리가 코로 말아 땅에
내리치는 바람에 죽는 변이 있었다. 전생불(前生佛)로 외경하는
코끼리인지라 이 벼슬아치의 죽음은 자업자득의 업보로 인식되었었다.
어릴 적 벌에 쏘이면 할머니는 쏘인 환부에 된장을 발라주며 너 혹시
참외밭 서리갔다가 쏘인 것 아니냐, 남의 집 닭둥지에서 계란 꺼내
먹다가 쏘인 것 아니냐는 등 벌의 가해를 나의 소행에 대한 업보로
합리화하려 꼬치꼬치 따져물었던 기억이 난다. 끝내는 일전 밥
얻어먹으러 온 거지에게 준 밥이 쉬었던가 보다고 자신의 부지간에
저지른 행위에 그 업보를 합리화하려 들었던 것이다.
조상들의 동물관은 해치면 어떤 형태로든지 공격과 보복 받는다는
생명사상과 맥락돼 있었다. 그리하여 그 집에 사람이 나고 죽고 시집가고
들 때 반드시 벌통에 먼저 찾아가 고하는 것이 관례요, 과거에
급제하거나 송사가 있을 때도 반드시 벌통에 고사를 지냈다. 사람이
죽으면 검은 보로 벌통을 덮어주어야 했고 벌도 알아서 꿀 따러 나가는
일을 삼간다고 한다. 동물심리학자 로렌스는 벌을 비롯한 동물들의
공격성을 체계화해 유명하다.
비 오는 날 산길 갈 때에는 기어나올 벌레를 밟아도 죽지 않게끔
느슨하게 삼은 짚신(五合鞋)를 신고 나가는 것이 법도요 이( )를 잡으면
죽이지 않고 보살통(菩薩筒)이라는 대나무 통에 담아 나뭇가지에
걸어두었다. 이 같은 크고 작은 생명에 대한 배려로 짐승들의 분노나
보복을 살 일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흥부처럼 짐승으로부터 보은의
선과(善果)를 받았다.
지금 중국을 휩쓴 사스의 원인이 야생동물에서 묻어나온 바이러스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해지면서, 사스 발생지가 짐승치고 안 먹는 것이
없다는 광둥요리 지역이라는 것과 사스 초기감염자가 예외 없이
광둥요리를 하는 주방장이라는 것을 연계해, 무차별 살생에 대한
야생동물들의 보복이라는 설이 중국에서 설득력 있게 대두되고 있다
한다. 사스가 한국사람을 경원한 것은 김치나 마늘 때문이 아니라
생명관일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이규태 ·kouy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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