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공직 윤리강령

bindol 2022. 11. 2. 07:59

[이규태 코너] 공직 윤리강령

조선일보
입력 2003.05.20 20:27
 
 
 
 


공무원의 청렴 유지 등을 위한 행동강령이 시작되자 요식업체, 골프장
등 관련 업계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조사비를 5만원 이내로,
관계 공무원과 식사는 2만원 이내로, 4촌 이내의 친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는 회피하며 부당한 상급자를 하급자가 고발할 수 있게 한다는 등
실천사항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때문일 것이다. 부정부패의 원천적
차단시도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조선조 때만 해도 그보다 몇 곱절
가혹한 제재가 시도됐었다. 이를테면 현감이라는 말단 수령일지라도
이권을 둔 혈연을 통한 접촉을 차단코자 수령의 아들마저도 아버지가
사는 관가(官家) 나들이를 할 수 없게 했다. 가족일로 급히 아버지를
만날 일이 생기면 담을 헐고 들어오는 소위 「파장문(破墻門) 출입」을
해야 했다. 근간에 권력자의 아들들이나 동기간, 친인척들이 줄줄이
법문에 걸려든 것과 파장문 정신과 비겨봄 직하다.

사촌 이내 친척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는 회피할 수 있게 한다 했는데,
옛날에는 상피(相避)라 하여 사촌 이상의 친척뿐 아니라 연척마저도
연관·이해 관계가 있는 부서에서 일할 수 없게 법제화돼 있었다. 예비
대권을 가진 세자(世子)를 가르치고 뒷바라지한 관서의 벼슬아치들은
세자가 등극하면 상피를 했다. 유계문(柳季聞)이라는 이는 경기
관찰사(觀察使)로 발령나자 관직 이름에 아버지 성함인 관(觀)자가
들어있다는 것만으로 부임을 기피하는 상피 소(疏)를 올렸을 정도로
상피정신에는 투철했다.

사대부로서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내부고발용 용어가 따로
있었다. 이를테면 뇌물 먹는 것을 제기불칙(祭器不飭), 곧 제기를 깨끗이
하지 못해 조상을 욕되게 한다 했고 가문에 추문(醜聞)이 있으면 장막과
발이 정돈되지 못했다 하여 유박불수라 했다. 이렇게 내부고발을 받으면
사헌부 감찰들이 사실을 확인, 야밤의 티타임인 다시(茶時)를 기해 그 집에
몰려가 덤불로 집을 싸고 문전에 제기불칙 유박불수―하는 죄목을 적은
죄판(罪板)을 걸어놓고 돌아온다. 이를 야다시(夜茶時)라 했는데, 야다시를
맞으면 관직뿐 아니라 세상에서 버림받은 몸이 된다. 이처럼 별의별 공직
윤리강령이 시도돼 왔지만 얻은 것은 없었다. 물리적 외압보다 정신적
기틀 쪽으로 접근해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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