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馬上才

bindol 2022. 11. 3. 16:05

[이규태 코너] 馬上才

조선일보
입력 2003.05.19 20:14
 
 
 
 


엊그제 18일 과천 경마장에서 고려·조선시대 기마병의 무술인
마상재(馬上才)가 피로되었다. 유럽을 휩쓸었던 몽골, 서역과 중국을
위협했던 흉노와 월씨국(月氏國)은 모두 북방 기마민족이요, 이
기마민족의 일부가 남하하여 신라와 일본의 지배층을 이루었다는
기마민족설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작금이다. 신라고분들에서 출토된
유물의 적지 않은 분량이, 백마가 그려진 자작나무 안장을 비롯,
마구(馬具)라는 것이 이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산이 많아 기마활동에
부적한 한반도이면서도 기마문화가 끈질기게 유지돼 내린 것도 이
기마민족의 유전질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미 고려 태조 때 귀순한
적장(賊將) 아자개를 맞는 환영잔치를 격구(擊毬)장에서 베풀었다 했는데
바로 격구가 서양의 폴로 같은 마상경기로 삼국시대부터 이 격구가
있었다는 것이 된다. 예종 연간에 임금이 서경(西京)에 행차했을 때
여인들의 격구경기를 피로했다 했으니 대단한 국민 스포츠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조 태조 이성계는 말을 타고 갖은 재간을 다 부리는
마상재(馬上才)의 천재였다. 왜군과 싸울 때 적장의 창을 마상재로
빗나가게 했다 했는데 달리는 말 위에서 몸을 말 왼편에 떨어뜨려 창을
피한 것이니 바로 마협장신(馬脇藏身)이다. 용비어천가의 기재라 과장된
면도 없지 않으나 이성계의 마상재에 대해 "말 위에서 엎드렸다 누웠다
옆배에 붙었다 아랫배로 돌아나온다. 앞다리 사이로 나와 말꼬리 붙들고
공을 쳤기로 온 나라 안이 놀라고(擧國驚駭) 이전에 듣지
못했던(前古無聞) 일이다" 했다. 이 무예를 장려하고자 뚝섬 살꽂이
다리에서 임금 배석 아래 마상재를 겨루어 인재를 뽑았다. 연산군은
기생을 거느리고 앉아 가두어놓은 수(雄)말들을 암(雌)말 우리에 풀어
집단 성행위를 즐기는 변태충족 현장으로 악용한 일도 있었다.

일본에 가는 사신 일행에는 마상재의 재인들이 수행하여 일본
실력자들에게 겁을 주었는데, 18세기 때 사신 박경행(朴敬行)은 "말에
몸을 숨기고 적진에 돌입하여 적장의 목을 베거나 깃발을 약취해 오는데
이만한 재간을 가진 자가 조선에는 400~500명 있다"고 겁을 주고 있다.
밖으로 펴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숨어드는 한국의 퇴영(退 ) 이미지에
반동하는 마상재요, 해외에 널리 보여 진취적 전통을 과시했으면 하는
마상재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