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내나무 심기
엊그제 서울 뚝섬 3600평 땅에 내 나무 심기가 벌어졌었다. 개인이나
가족, 모임들이 자신들의 염원이나 사연을 담은 묘목을 심어 싱싱하게
자라는 그 나무에 자신의 운명이나 희망을 의탁하는 자연회귀운동의
일환이랄 수 있다. 이를 주관하는 당국에서는 도시의 자투리 땅이나
빈터만 있으면 나무를 심어 생태계를 복구하는 그린 트러스트 운동의
첫발이라고 하지만 우리 조상들의 수목을 둔 오래 잊혀진 전통과의
접목이라는 차원에서 각광을 대보고자 한다.
딸을 낳으면 그 딸 몫으로 오동나무를 밭두렁에 심고 아들을 낳으면 그
아들 몫으로 선산에 소나무를 심었다. 이를 그 아기의 운명과
동일화시켰다 해서 「내 나무」라 했다. 아기가 자라면서 앓으면 내 나무
찾아가 왼새끼 둘러놓고 병 낫기를 빌었고 과거에 급제하면 맨 먼저 내
나무 찾아가 어사화(御賜花) 옮겨 꽂고 큰절을 했다. 딸이 시집갈 때 그
오동나무 잘라 농짝을 만들어 여생을 더불어 하고 아들이 늙어 죽으면 그
소나무 잘라 관을 만들어 후생을 더불어 영생한다. 이처럼 나무와 인생을
동일화시킨 문화가 동서고금 어떤 다른 나라에도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우리 조상들 나무에는 한 그루 꽃나무일지라도 수령(樹靈)이 깃들어
있다는 수목관(樹木觀)과 이 동일화는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인조 때
문신 이덕형(李德泂)의 「죽창야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인왕산
아래 김공이 별나게 고운 노란 장미에 취해 졸고 있는데 노란 옷 입은
장부가 나타나 "주인의 아들이 더러운 물을 내 얼굴에 뿌리길 자주 하여
해코지를 하고 싶은데 주인분의 덕이 커 이도저도 못하고 있나이다"
했다.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첩 아들놈이 나타나
장미꽃나무에 오줌을 싸 꽃잎을 적셔 놓는 것을 보고 노란 장미의
수령(樹靈)임을 알았다 했다. 내 나무는 수령관(樹靈觀)이 접착제로
작용한 자연과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결합방식이랄 수 있겠다.
내 나무 무성한 것을 보고 좌절을 이겨낼 것이요, 그 나무 아래 가족과
둘러앉으면 내 집보다 안식감이 더할 것이다. 그렇게 내 나무처럼 푸르게
살다가 죽어서 뼛가루를 나무뿌리에 묻어 내 나무에 삶을 연결시키는
유럽의 수목장(樹木葬)이나 화목장(花木葬)으로도 번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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