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초파일과 미국 거북

bindol 2022. 11. 3. 16:27

[이규태 코너] 초파일과 미국 거북

조선일보
입력 2003.05.07 19:39
 
 
 
 


생명을 존중하는 불교행사가 방생(放生)이요, 방생에서 선호되는 생물이
거북이다. 불교설화에서 탄생된 용궁, 그 용궁과 이승의 메신저가
거북이기에 불심을 의탁하는 데 선택받음 직하다. 한데 서양문화가
토종문화를 무차별 포식하듯 미국 미시시피 거북이 토종 어류를 무차별
포식하고 있어, 오늘 초파일에 그 미국 거북의 방생을 금함으로써
거북이와 한국 문화의 수천년 밀월에 조종을 울린 셈이다.

고구려 건국신화에서 쫓기는 주몽이 시엄수(施掩水)에 이르러
수신(水神)인 하백녀의 외손자임을 고하자 거북들이 나와 등으로 다리를
놓아 피신시켰다. 아버지 눈을 뜨게 하고자 공양미 3백석에 팔려
인당수에 투신한 효녀 심청을 등에 태우고 용궁까지 모신 것이 거북이요,
무가(巫歌)에서 물에 버려진 발리공주(鉢里公主)를 용궁에 데려간 것도
거북이며, '별주부전'에서 병든 용왕의 약인 토끼간을 구하러 뭍에
나간 것도 거북이다. 뿐만 아니라 '잡아험경(雜阿含經)'에 보면
불교에서 수도의 상징으로 우러렀다. 거북이 목과 사지 꼬리를 자신의
등딱지(龜甲) 속에 움츠리듯, 수행승은 육근(六根) 곧
눈·귀·코·혀·몸·뜻을 불심 아래 수렴하는 장육(藏六)이 수행의
밑바탕이다. 비단 불문에서뿐 아니라 옛 선비들 장육(藏六)으로 아호를
삼은 이가 수없이 많았으니 장육사상이 한국인을 꽤나 지배했음을 알 수
있다. 지조가 별난 기생을 장육기생(藏六妓生)이라 했는데, 표정이나
언행 그리고 마음과 몸을 함부로 하지 않은 데서 얻은 이름일 것이다.

전통 생명사상도 거북이 대변하게 마련이다. 사육신 박팽년의 사위인
이공린이 첫날밤 꿈에 여덟 마리의 거북이 나타나 솥 속에 찜질로 죽게
됐으니 살려달라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깨어 알아 보니 신랑의 보양을
위해 거북 여덟 마리를 고려고 솥에 안쳐놓고 있었다. 이공린은 이
거북이를 방생시켰고 그 업보로 여덟 아들을 낳았는데 오(鼇) 구(龜) 원
별(鼈) 등 거북이 변으로 이름을 지었고 모두가 대성해 생명사상의
본보기로 널리 구전돼 내렸다. 거북은 제비와 더불어 보은을 하는데,
삼강오륜이 없는 미국 땅에서 살아온 양거북에게 생명사상이고
장육사상·보은사상이 들 리 없어 초파일 방생에서 소외받기에 이른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