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팡파르없는 凱旋

bindol 2022. 11. 3. 16:30

[이규태 코너] 팡파르없는 凱旋

조선일보
입력 2003.05.06 19:58
 
 
 
 


임진왜란 때 부사 이정암(李廷 )이 연안성을 지키는데 왜장
구로다(黑田長政)가 해주를 함락한 여세를 몰아 삼천 병력으로 성을 세
겹으로 포위, 좁혀들었다. 복판에 마른 풀더미를 높이 쌓고 그 위에
올라앉은 이정암은 성이 함락되면 불을 질러 타죽을 것이라고 호령하고
군민을 독전했다. 이렇게 나흘 밤낮을 죽기로 싸워 적의 반수가 죽자
시체를 모두어 불사르고 도망쳤다. 연안성이 무패(無敗) 왜장 구로다에
의해 포위당했다는 전갈을 받은 조정에서는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할
것으로 통곡을 하고 있는데 승전보고서가 날아들었다. "적이 아무 날
성을 포위하였다가 아무 날 포위를 풀고 갔습니다"라는 것이 전부요,
장황한 말 한마디 붙임이 없었다. 적을 패배시키기는 쉽지만 전공을
자랑하지 아니하기란 그 더욱 어려운 것을―하며 조정 상하 신하들이
맞붙들고 울었던 것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관할 원군(援軍)사령관인 명나라 진도독(陳都督)과
함께 있을 때 명군 참모가 와서 절이도(折爾島) 전투상황을 보고했다.
새벽에 적이 대거 쳐들어왔는데 조선 수군이 다 잡고 명나라 수군은
풍세가 순하지 못하여 모조리 패했다 했다. 이에 충무공은 "도독 휘하의
승리는 누가 이기건 도독의 승리입니다. 조선군이 나포한 적선과 적의
머리 벤 것을 모두 진도독의 공으로 바치겠사오니 조정에
보고하소서"하고 전공을 돌렸다. 탄복한 진도독은 그후 충무공의
상전이면서 충무공 휘하에서 작전을 수행했던 것이다. 충무공만한 인격의
크기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고대 이스라엘의 영웅 에프타는 싸워 이기는 대가로 이스라엘의
지배권을 약속 받았다. 중남미의 부족에서 개선 장군은 3년 동안
재산이건 인신이건 약탈권을 주었다. 고대 로마 이래로 개선장군을 위해
개선문을 세웠는데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 파리의 개선문,
브란덴부르크의 개선문 등이 그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대가와 명예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돌리기란 여간한 인간적 인격적 성숙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영웅이요, 이번 이라크전쟁을 승전으로
이끈 미 중부군 사령관 프랭크스 대장이 엊그제 고국에 개선했는데
부시의 승전 제스처나 국민의 승전 열기에는 아랑곳없이 퍼레이드나
환영행사도 갖지 않고 귀국하여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