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캐쥬얼 의원

bindol 2022. 11. 4. 16:13

[이규태 코너] 캐쥬얼 의원

조선일보
입력 2003.04.30 20:41
 
 
 
 


갑신정변 때 김옥균 일행은 임금을 받들고자 침전(寢殿) 정문인
협양문전에 이르렀다. 문지기 무감(武監)의 저지를 받았는데 그 저지
명분이 기발하다. 이들 복장인 평복 무관(無冠)으로는 임금 앞에 나설 수
없으며, 그런 복장으로 무슨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건 무효라 했다.
장검으로 내려치려 하자 "정장은 못하더라도 착관(着冠)만은…" 하며
애걸하다 칼을 맞았다.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반신불수가 돼 있을 때
고종황제의 동기간 한 분이 일본 임금 생일 기념식에 참석하여 일본
임금을 위한 만세를 불렀다는 것이 문제가 됐었다. 고종이 불러 그 사실
여부를 묻자 무복(無服) 무관(無冠), 곧 정식 조복과 관을 쓴 것이
아니라 양복차림으로 만세를 불렀다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러시아 니콜라이2세의 대관식에 고종의 특사로 그 먼길을 갔던 민영환은
그 식장에 들어가지 않았다. 식장인 러시아 정교교회당에 들어가려면
모자를 쓸 수 없게 돼 있는 데다 대관식인지라 오로지 황제 이외에는
무관이어야 했다. 무관 평복이면 식장에 들어가나마나로 민 특사는
판단했을 것이다. 이상의 세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옛 우리 조상들에게
있어 정장 착관은 바로 그 사람의 인격과 벼슬과 공인으로서의
동일성이요 그 표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시제를 모실 때에는 한복 정장에 관을 써야만 하는 문중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곧 제사를 드리는 자격마저도 좌우했던 관복(冠服)이다.
영국은 물론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 지역의 술집에서마저
정장하지 않았다 하여 거절당한 적이 있다. 미국의 강의실에도 교수에
따라 청바지 차림이나 머리에 염색한 학생의 입실을 거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단의 의향이나 논리질서보다 개개인의 의사나 취향에 비중을
실어온 민주주의는 나 본위의 미이즘을 살찌게 해왔고 살찐 만큼 집단의
논리가 저항을 받아왔다.

이 충돌이 권위 보장이 남달리 요구되는 국회에서 벌어졌다. 이번
보선에서 당선된 한 의원이 면바지 티셔츠의 캐주얼 차림으로 의원선서
단상에 오른 것이다. 편한 차림으로 일하고 검은색 일색의 의원들
복색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했다. 공감하는 층도 없지 않을 것이나 의례상
격식 지키는 것이 그의 정치철학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