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교보 강남 책방

bindol 2022. 11. 4. 16:06

[이규태 코너] 교보 강남 책방

조선일보
입력 2003.05.02 19:37
 
 
 
 

모리스 쿠랑의 「한국문화사 서설」에 개화기의 전통 책방 모습이
묘사돼 있다. 광교(廣橋) 인근에서 볼 수 있는 책방은 책을 벌여놓은
판자 뒤에 주인은 비단옷에 관을 쓰고 장죽에 문채 깊이 들어앉아 여간
귀한 손님 아니면 거동하려 들지 않았다 한다. 몰락한 양반이 마지못해
택하는 생업으로 한글로 된 책이나 잡서 파는 것을 수치로 알고 깊이
감추어 두었다가 찾으면 꺼내 팔았다. 이밖에 책세가(冊貰家)라 하여
대본가가 있었는데 대체로 노점에 담배쌈지나 망건 등 잡화를 늘어놓은
곁에 이야기책 몇 권 깔아놓고 화로 냄비 등 물품을 잡고도
빌려주었다.이처럼 전통 책방은 커야 두어칸이요 잡화의 일종으로 파는
반칸도 못되는 노점이 대부분이었다. 그 100여년 후인 오늘 문을 여는
한국 최대 규모라는 교보 강남책방은 축구경기장의 두 배 넓이에
200만권의 책이 꽂힐 참이라 한다. 여태까지 가장 컸던 광화문
교보문고를 웃도는 것이요, 부산 대구 등 교보건물 지하에 개설한
대형서점에 이은 일곱 번째의 개점이다.

한반도의 복판 서울, 그 서울의 복판 광화문 네거리에 교보빌딩이
들어서자 사통팔달의 지하공간은 서울 아니, 한국에서 최고의 상가일
수밖에 없고 그 임대는 막대한 이권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독서량이
나라의 장래를 좌우한다」는 건물주인 대산(大山·신용호·愼鏞虎)의
고집 앞에 그 이권은 헌신짝이 되고 그 자리에 책 읽는 멍석을
깔아놓기에 이른 것이다. 「이 멍석 위에 와서 책을 서서보려면 서서
보고 앉아서 보려면 앉아서 보고 베껴 가려면 베껴 가고 종일 보고
싶으면 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그 자리에 꽂아놓고 사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으면 사들고 가도 되는―」 소위 대산의
「지식보시(知識布施)」를 문고 창설 이념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이
개점잔치에 고 이병철씨가 와 대산의 손을 잡고 한동안 놓지 않았다던데,
뜻에 돈 들이는 용기에 대한 감탄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개점 20년
동안 판 책을 쌓아놓으면 백두산의 976배나 높은 그야말로 대산(大山)을
이룬 것이다. 한국의 미래를 현실에서 보고 싶은 외국 관광객들의
관광코스로 뜨고 국제기구의 원조, 외국기업들의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데까지도 이 지식공간의 열기가 한몫해 왔다 하니 미래를 내다보는
공간이 하나 더 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