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歷史 나무

bindol 2022. 11. 4. 16:10

[이규태 코너] 歷史 나무

조선일보
입력 2003.05.01 20:51
 
 
 
 


갑신정변의 현장 서울 견지동의 우정총국(郵政總局)에 자라고 있는
500년 홰나무가 각광을 받게 됐다. 정변이 일어났던 1884년에 서울을
돌아본 한 일본인이 쓴 '조선경성기담(朝鮮京城奇談)'이라는 견문록이
발굴되었는데 우정국 구내에 자라는 홰나무 곁에 태극기가 게양돼 있었다
했다. 근대사의 대사건을 목격한 고목으로 새삼 주목을 받게 되고 따라서
관광가치가 부가되게 됐다. 이 홰나무 고목이 있었다는 것은 그 현장이
이전부터 관아(官衙)였음을 말해준다. 중국 고대부터 홰나무는
삼공(三公)을 상징, 우리나라 관아들에서도 홰나무 심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우정국이 있었던 동명(洞名)이 궁에 의약을 지어 바치는
전의감(典醫監)이 있었다 하여 전동(典洞), 홰나무가 있었다 하여
괴동(槐洞)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개화기에 우정국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그 자리가 조선조 국초에 세운 전의감이었을 확률이 높다.

갑신정변의 전초전으로 안동별궁에 방화하기로 한 1차공작이 실패하자
연락책인 유혁로(柳赫魯)가 우정국에 숨어들어 김옥균을 불러내 이웃
초가에 불지르도록 지령받은 곳도 홰나무 아래요, 2단계 공작으로 우정국
이웃에 불이 나면 그 혼란을 틈타 수구파 살해를 맡은 이규완(李圭完)
최은동(崔殷童) 등 행동대가 잠복해 있던 곳도 이 홰나무와
시궁창이었다. 우정국 홰나무는 갑신정변을 도운 개화파 나무다.

베이징 자금성 북문을 나오면 경산(景山)으로 이어진다. 볼것 많은
경산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이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목매달아 죽은 홰나무다. 이자성이 이끄는 반란군이
자금성을 포위하자 황제는 황후 주씨를 자결토록 하고 16세의 공주를
울면서 찔러죽였다. 그리고 경산에 올라 홰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한
것이다. 전란 중에 사라졌던 그 나무밑동에 돋아난 아들나무를 고히 길러
명맥을 잇게 한 것이다. 지금은 목매달기에는 너무 나약하지만 거기에
얽힌 역사와 교훈의 중량은 막중하다. 만약 이자성의 후손이 이 나무를
1000만달러에 사겠다고 나서도 그 값의 1000분의 1도 안 될 것이라던
관리소장의 말이 생각난다. 한 그루 고목이지만 거기에 기생하는 역사의
비중에 따라 이렇게 값질 수 있는 것이다. 많이 널려 있을 역사나무를
찾아 보존하는 데 눈돌릴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