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감악산의 風笛
1960년대만 해도 런던에 '임진강'이라는 바가 성업을 이루고 있었다.
한국 참전 영국 병사들의 집산지로 영국 내의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구심점이 돼 있었다.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가 시작되었던 1951년 4월
말께 일당백(一當百)의 요새라는 임진강 감악산(紺岳山)
설마령(雪馬嶺)을 방어하고 있던 영국연방 글로스터셔연대 소속 장병
800여명이 포위되어 전멸당했다. 한 부상 영국 병사가 야음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두메에 사는 촌로가 업어다 벙커에 숨겨 두고
수복되기까지 한 달 동안 간병하고 먹여 살렸다. 이 병사가 설마령
전투에서 살아난 단 세 사람 가운데 하나이고, 셋 중 한 병사가 본국에
돌아가 '임진강'을 개업한 것이다.
글로스터셔 제1대대와 연방군에 종군 중인 용맹한 한국군을 추모하여ㅡ라
새겨진 전적비는 감악선 설마령에 세워져 있어 한국을 들르는 영국
사람이면 찾게 돼있는 순례지로, 전적비 앞에는 작은 사연들이 적힌
꽃다발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 연천과 적성 간에 있는 감악산은 한반도를 수호하는 오악(五岳)
가운데 북쪽에 자리한 신산으로 당나라 명장 설인귀(薛仁貴)가 이곳에서
전사하여 무신(巫神)으로 좌정, 신병을 거느리고 나라를 지켜준다 하여
고려 때부터 국가 차원의 국사(國祀)를 받아 왔다. 고려 현종 5년에
거란군이 대거 침입, 장단까지 내려 왔을 때 감악산에 난데없이 수만
정기(旌旗)가 나부끼고 대군의 함성 소리가 들려오는지라 거란군이 겁을
먹고 퇴거한 일이 있었는데 감악산 호국신의 조화로 보고 큰 제사를
올리고 있다. 충렬왕이 역신(逆臣) 내안(乃顔)을 치러 나갈 때 감악산
신당에 들러 그 신령에게 도만호(都萬戶)의 벼슬을 내리고 신주(神主)를
참모로 거느리고서 종군했을 정도로 그 신령의 호국 영험은 역사 속에
기억돼 내렸다. 그러한 신령이 글로스터셔연대의 옥쇄를 방관한 것은
아마도 싸우는 피아(彼我) 간이 한국 사람이 아닌 데다 이념전쟁을
이해하기에는 산신의 머리가 돌아가지 않은 때문인지 모르겠다.
엊그제 감악산 현장에서는 전투 52돌을 맞아 한국 참전 영국 노병들이
스코틀랜드 전통 악기인 풍적(風笛)을 앞세우고 추도 행진을 했다. 그
가운데 이 전투에서 생환한 바 '임진강'의 주인도 들어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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