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비행기 수출

bindol 2022. 11. 4. 16:14

[이규태 코너] 비행기 수출

조선일보
입력 2003.04.29 19:51
 
 
 
 

서양에 천사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천녀가 있었다. 서양의 천사는
우두머리 천사 미카엘을 비롯 성모 마리아의 둘레를 나는 아기 천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날개로 난다. 한데 한국의 천녀들은 경주 봉덕사나
오대산 상원사의 종벽(鍾璧)들에서 보듯이 구름을 타고 천의(天衣)로
난다. 서양문명을 탄생시킨 희랍의 풍토가 해양성이기에 바다를 나는
갈매기의 날개로 비상원망(飛翔願望)을 만족시키고 한국의 풍토는
산악성이기에 산마루 넘어가는 구름에 비상원망을 충족시킨 때문일
것이다.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 욕망은 하늘을 지배하는 초월자에게 영역침해가
된다. 그래서 그 비상 시도는 좌절되거나 응징받게 마련이었다.
희랍신화에서 이카로스는 아버지가 밀랍(蜜蠟)으로 밀착시켜준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나는 바람에 밀랍이 녹아 추락해 죽고 만다. 구름을 타고
종횡무진 날아다닌 손오공도 이르고 보니 부처님의 손바닥 위였듯이
하늘은 인간 비상을 거부했지만 그 욕망을 꺾지는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593년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때 비행기가 등장했다면
곧이 듣기질 않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서양 비행기의 상상적
뿌리로 치는 「날개치는 기계」를 스케치한 지 70여년 후에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를 띄운 셈이다. 호남 실학자 신경준(申景濬)이 각종 수레를
개발하여 국방에 대처해야 한다는 상소문 가운데 진주성에 갇혀있던 어느
한 진주 사람이 성을 넘어가는 수레를 만들어 가족들을 성밖 30리 밖으로
피란시킨 견문을 적고 그것을 목격한 노인이 아직 살아있다고도 했다.그
진주성을 날아 넘은 비행 원리에 대해 적은 것이 없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유추할 수는 있다. 18세기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원주에 사는
사람이 하늘을 나는 수레를 만드는 책을 갖고 있다 하여 이를 보았다
하고 그 원리를 적어 남겼다. '가죽으로 된 큰 바람 주머니를 만들어
뜨게 하고 마치 독수리 같은 날개를 달아 그 가죽의 바람을 조작하여
백길 높이를 나를 수 있는데 네 사람까지 태운다' 했다. 전투기로도
전용할 수 있는 국산 경비행기를 사상 처음으로 수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진주성과 이웃한 사천(泗川)에서 만든 비행기라서 그 더욱 한국
비행사의 고금을 이어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