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달라지는 停年觀

bindol 2022. 11. 4. 16:21

[이규태 코너] 달라지는 停年觀

조선일보
입력 2003.04.24 20:02
 
 
 
 


미국의 카드 가게에 가면 크리스마스 카드, 밸런타인 카드, 생일축하
카드 말고도 한국에서는 생각 못할 축하카드가 있다. 해피 리타이어먼트
카드가 그것이다. '퇴직을 축하합니다. 많은 새로운 일들을 하게 되고
그 일들을 즐기는 자유로운 시간, 시간들ㅡ당신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퇴직을 부러워합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에, 새로운 모험에의 도전에
얼마나 가슴 벅찹니까.' '험한 큰 산 하나를 넘었습니다. 이제는 꽃
피고 새 울며 개울 흐르는 야산에 들게 된 것을 부러워합니다.' 우리
한국과 정년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직감할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랑체라 하여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 공무원이면 연금, 일반인이면 사
모은 공채(公債)의 이자로 여생을 사는데 검소하게나마 저 나름대로 살
수만 있으면 가급적 빨리 직장을 그만두려 한다. 곧 일하지 않는 행복에
길들여져 있다. 프랑스의 노동운동 구호에 정년을 낮추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빨리 회사를 그만두고 연금으로 여생에 자적하려는 요구의 분출일
것이다.

영국 정부가 근로자들의 정년을 70세로 상향하고 이를 채우지 못할 경우
연금을 삭감키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고령화 사회와 바닥난 연금에
대한 대책이라지만 서양 사람에게 만연돼 있는 조기퇴직 선망에 쐐기를
박는 일로 노동자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으로 관망하고 있다. 정년 연장을
갈망하는 일벌레의 왕국 한국에서는 꿈 같은 이야기다. 노인 사회학에서
65세를 노인으로 정하고 그 이전 5년을 노인전기(前期), 그 이후 5년을
노인후기(後期)로 잡았던 것을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5세씩 상향시켜 유럽
선진국에서는 65세 정년을 70세로 상향하거나 정년을 폐지하는 쪽으로
가고 있으며 영국의 정년 연장도 그 추세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래로 70치사(致仕), 곧 정년이 70세였으며 치사
후에도 원하면 반록(半祿), 곧 감봉으로 일하게 하거나
검교(檢校)·체아(遞兒) 같은 고되지 않고 명예는 유지되는
노인직(老人職) 향직(鄕職)을 주었다. 65세 정년으로 사장될 70세까지의
가능 노동력을 조사해 GNP에 대비시켰더니, 적지 않은 28%에 이른다는
미국의 보고도 있고 우리나라도 2000년대에는 생산인구 3명당 한 노인을
부양하게 된다는 계산도 나오고 있어 영국의 정년 연장이 타산지석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