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星條旗 主義

bindol 2022. 11. 7. 07:15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星條旗 主義
입력 2003.04.17 19:40:11 | 수정 2003.04.17 19:40:11

뉴욕 흑인거리인 할렘가의 술집에 들면 벽에 아프리카 지도를 붙이고 기니나 모잠비크의 종이국기를 그 지도에 꽂아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미국 흑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그렇게 확인하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흑인 남녀 할 것 없이 목걸이나 귀고리 모양이 아프리카의 지형인 경우가 허다하다. 미국의 흑인들에게 뿌리 의식을 일깨웠던 소설 「루츠」의 주인공 킨타쿤테 패션이 혜어스타일, 티셔츠, 색안경 등으로 흑인들의 일체감을 과시했었다. 1975년에 죽은 블랙 모슬렘의 지도자 엘리아 무하마드는 미국 내에 흑인 독립국 건국운동을 벌였으며 그의 추종자는 200만명을 헤아렸다. 백인들의 흑인차별까지 감안하면 미국 흑인들의 국가의식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이라크 전선에서 모래바람 날리는 가운데 예배를 보고 있는 회교 미군병사들 보도사진이 별나게 인상에 남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 흑인들의 신앙적 일체감으로 블랙 모슬렘을 들 수 있으며, 그 신앙의 형제인 이라크땅에서 그 형제와 대결해 싸우는 그들의 심정을 생각해서다. 범인들의 생각으로는 싸우러가는 나라와 같은 동족이어서 같은 신앙을 가진 형제는 차출에서 제외시켰음 직하다. 배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한데 그것은 성조기주의를 모르는 기우(杞憂)에 불과하다. 2차대전 중 시칠리아 상륙작전 때 있었던 일이다. 배튼 미군사령관은 전 부대원을 앞에 놓고 일장연설을 했다. “이제부터 이탈리아 땅에 상륙작전을 개시한다. 나는 여러 장병의 과반수가 이탈리아계(系) 미국인으로 앞으로 맞싸울 적과 같은 피를 물려받은 형제간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을 명심하길 바란다. 여러분의 조상들은 자유를 사랑하여 만난을 감내하고 대서양을 건넜고 앞으로 싸울 상대의 조상들은 그 용기를 상실하고 노예에 안주한 사람이라는 걸―.” 미국사람들은 미국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미국사람이 된 사람이다. 낯선 사람끼리 사노라면 심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하여 집단을 이끌고 질서를 잡을 강력한 지도자상(像)을 추구한다. 이 정신을 집약한 것이 성조기다. 전쟁승리를 선언하는 부시 배경의 성조기가 새삼스럽다. 곧 성조기는 여느 국기와는 다른 플러스 알파가 있으며 이번 전쟁에서 그 알파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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