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흰 진달래
「연달래 진달래 난다알래!」 만산에 진달래가 필 무렵 나물 캐는 소녀를
만나면 이렇게 놀려먹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놀림받으면 소녀는 땅에
주저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울게 마련이었다. 진달래는 피어나는 장소에
따라 그 빛깔의 농담(濃淡)이 다른데 연한 놈을 연달래 진한 놈을
진달래, 난초처럼 검붉은 놈을 난달래라고 갈라 불렀다. 앳된 소녀의
젖꼭지가 연달래색이요, 숙성한 처녀의 그것은 진달래색이며, 한물간
여인의 그것은 난달래색이기에 바로 이 놀림말은 산골의 순박한
외설이기도 하여 난달래로 놀림받은 연달래 소녀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참 피어오르는 쳐녀를 빗대어 「만산(滿山) 진달래에 볼때기 덴
년」이라 한다. 이처럼 진달래는 붉다. 진달래를 두견화라 하는데 붉은
피를 토하며 우는 두견새의 그 피에서 피어난 꽃이라 하여 두견화다.
이처럼 진달래는 붉고 붉어야 진달래인 것처럼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흰 진달래도 있다. 세조 때 재상 강희안(姜希顔)은
평생 꽃을 좋아하여 「양화소록(養花小錄)」이라는 책을 남겼는데 그
가운데 사람에게 인품이 있듯이 꽃에는 화품(花品)이 있어 그 화품을
일품(一品)에서 구품(九品)까지 품계를 매겼다. 진달래는 때를 맞추어
어김없이 찾아오는 시우(時友)로 붉고 흰, 두 가지가 있다 하고 흰
백두견은 운치가 더 있어 5품에, 붉은 홍두견은 그보다 한 등 낮추어
6품에 랭킹하고 마땅히 습한 땅을 피해 북쪽을 향하게 심어야 잘 자란다
했다.
옛 선비들 남의 집에 들르면 뜰에 무슨 꽃을 심고 사느냐로 그 삶의 격을
가늠하곤 했는데 흰 진달래는 각박한 바위 틈이나 거칠고 메마른
황지에서 잘 자라고 반드시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해 핀다 하여 결백하고
일심불란한 한사(寒士)임을 그로써 갈파했으며 거기에 지붕에 하얀
박꽃이, 장독대에 하얀 앵두꽃이 피었으면 그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한국
정신사에 비중을 차지했으면서도 사라지고 없는 그 흰 진달래를 30년의
노력 끝에 종자번식에 성공시킨 한 벤처 농부가 보도되었다. 칠갑산
자락에 500여그루의 흰 진달래가 지금 만개하여 붉은 진달래가 처녀
볼때기 데우듯이 흰 진달래가 한사의 마음을 뽀얗게 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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