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사스와 마늘

bindol 2022. 11. 7. 07:17

[이규태 코너] 사스와 마늘

 

조선일보
입력 2003.04.15 20:17
 
 
 
 


60년대에 '일리노어 타블렛'이라는 마늘 당의정(糖衣錠)이 미국에서
유행했었다. 당시 팔순이 넘도록 정력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일리노어 여사에게 노익장의 비결을 물었을 때
"수십년 동안 마늘을 먹어왔고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잔병이나
유행병을 앓은 적이 없다는 것밖에 말할 것이 없다" 했다. 이 말이
불씨가 되어 미국에 마늘 붐이 일었고 그 기피요인인 냄새를 없애고자
고안된 마늘 당의정을 그녀의 이름을 따 일리노어 타블렛이라 불렀다.
마늘의 주성분인 알리신 1밀리그램은 15단위의 페니실린
항균력(抗菌力)과 맞먹으며 마늘이 살균력을 발휘하는 세균이 무려
72종에 이르렀다. 150종의 식품 항균력 조사에서 마늘이 가장 강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마늘을 먹었을 때 암세포에 대한 항균력이 160%
증진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돌림병, 곧 전염병이 나돌면 주술적(呪術的)인 방법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돌림병에 따라 음양(陰陽)의 성이 있는데
장티푸스와 콜레라는 암컷으로 이를 성적으로 환대하고자 남자 성기를
상징하는 다듬이 방망이를 홀수로 엮어 사립문 앞에 걸어두어 성적
공양을 했다. 특히 콜레라가 유행했을 때 마늘을 3-5-7-9쪽을 먹고 방문
앞에 마늘을 엮어 걸어두면 병귀가 피해간다고 알았다. 조상들 밤길 떠날
때면 마늘을 먹고 떠났다. 달려들지 모르는 귀신이 마늘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병균을 인체에 들고 나는 출입개념으로 파악했던 우리
조상들에게 마늘의 살균력을 체험방으로 터득하고 있었기에
항균(抗菌)주술 수단으로 마늘이 이용돼 내렸음을 미루어 알 수 있게
한다.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사스가 한반도에만 상륙하지 않고 있자 그
이유에 대해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 작금이다. 비단 네티즌뿐 아니라
미국의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의 음식문화와 같은 지역의
나라들에 사스 감염자가 없다는 것을 들어 바이러스에 저항력을
인정받아온 마늘의 항균력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는 보도를 했다.
의학적으로 실증된 것은 아니기에 위험한 추단이긴 하나 이런 때가
한국인의 체질이나 음식문화의 동일성(同一性)을 가려내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