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뗏목 장보고호
15년 전이던가 남해 장흥(長興)에 사는 10대 청소년 셋이 1t짜리
통통배를 훔쳐 타고 두 달 남짓 동지나해를 헤매다가 양쯔강 하구에서
중국 관헌에게 잡혀 송환된 일이 있었다. 배를 훔친 것도 잘못이요, 부모
애간장 녹인 것도 잘못이며, 목숨을 경시하기도 한 겁없는 아이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 마음 후미진 곳에서 건포도처럼 메말라 있는
진취정신의 원형(原型)을 보는 것 같아 싱그러웠던 기억이 난다. 한국
아이들은 바다가 가까워지면 저도 모르게 달려가는 데 예외가 없음을
관찰한 것은 한국에 오래 살았던 프랑스 신부 여동찬이다. 삼면이
바다요, 그 속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한국인에게 바다의 사상이 비장돼
숨쉬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신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 바다의 사상, 곧 바다 너머로 진출하고 싶은
프런티어십이 신선하게 살아있었다. 신라왕계의 방손인 대세(大世)는
신라의 산속에 묻혀 산다는 것은 조롱 속의 새나 어망 속의 고기와 다를
것이 없다 하고, 조그마한 낚싯배라도 타고 나아가 천하의 장관을 두루
구경하고 천하에 큰 소리 치며 살고 싶다고 포부를 토로하고는, 경주
남산 아래 사는 구칠(仇柒)이라는 친구를 얻어 일엽편주 띄워 무작정
떠나갔다. 내물왕 9년의 일이다. 진평왕 43년에는 설계두라는 신라
젊은이가 신라사람들 골품이나 문벌만 따지는 데 염증을 내고
서유(西遊)하여 신검 차고 천하를 호령하겠다 하고 일엽주 띄워 서해를
가로질러 당나라에 이르러 출중한 장수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신라의 대안인 일본 이즈모(出雲)에서 일본 왕조의 조상으로 군림했던
조상신들은 바로 신라 프런티어십의 소산이요, 당나라뿐 아니라 멀리
오천축까지 진출했던 그 많은 신라스님들도 이 왕성했던 바다의 사상
배경 없이는 설명될 수가 없다. 서해뿐 아니라 동남지나해의 해상 패권을
쥐었던 장보고의 위업이야말로 그 바다 사상의 금자탑이다.
학문을 모험으로 실천하는 윤명철 교수가 이끄는 12m 길이에 4m 폭,
무동력의 돛 단 뗏목 장보고호가 중국 사이를 오간 이 신라 프런티어십을
오늘에 실천하더니, 일본과의 그 고대모험을 되풀이하고자 오늘
출항한다. 풍전등화가 된 신라 프런티어십은 우리나라 정치·경제의
장래와 밀접하다는 것을 각성시키는 장보고호가 아닐 수 없다.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 코너] 지하 궁전 (0) | 2022.11.07 |
---|---|
[이규태 코너] 바이 바이 사담! (0) | 2022.11.07 |
[이규태 코너] 頭像위의 신발짝 (0) | 2022.11.07 |
[이규태 코너] 사스와 마늘 (0) | 2022.11.07 |
[이규태 코너] 흰 진달래 (0) | 2022.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