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바이 바이 사담!

bindol 2022. 11. 7. 07:23

[이규태 코너] 바이 바이 사담!

조선일보
입력 2003.04.11 19:31
 
 
 
 


임진년의 왜란으로 졸지에 피란길을 떠난 선조가 겨우 모래재(沙峴)에
이르러 성 안을 뒤돌아보니 검은 연기가 곳곳에서 치솟고 있었다. 임금과
동행했던 유성용의 「징비록」에 보면 임금이 성문을 나서기가 바쁘게
난민들이 형조(刑曹) 등 관아와 내탕고에 불을 질러 재물을 약탈했으며,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을 불질러 역대로 내려온 보화와 귀중품을
앞다투어 훔쳐갔다. 홍문관의 책과 승정원의 일기를 불사르고, 임해군 등
왕족과 홍여순 등 고관의 집들은 왜적이 오기 전에 우리 백성들이
약탈하고 불질렀다. 외적에 앞선 이 같은 우리 백성의 약탈·방화는
한양에서만이 아니었다. 일본 가토(加 正)군이 함경도 회령에
쳐들어가기 이전에 그곳 아전인 국경인(鞠景仁)이 난을 일으켜 부사
병사를 잡아 묶고 그곳에 피란해 있던 임해군과 순화군 두 왕자를 잡아
묶어 가토에게 바치고 군수 벼슬을 얻고 있다.

유성용이 평안도수사 김억추(金億秋)에게 시급한 작전명령을,
성남이라는 군관(軍官)을 시켜 전달하고 당일로 돌아오도록 하명했다.
1주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이를 수배·체포하여 신문하자 술값을
주고 다른 군인에게 대신 시켰다고 실토했고, 그 군인을 잡아 국문했더니
그 길로 적진에 이를 갖다 바치고 대가로 암소 한 마리 받았다고
실토했다. 군민(軍民)의 정신상태와 사기가 이 지경이니 전쟁이 될 턱이
없었다.

선정(善政)에도 외적 앞에 이 지경인데, 24년간 극악의 독재정치가
몰락하는 이라크의 바그다드임에랴. 모든 시민이 한 개씩의 자살폭탄일
것같이 기승을 부리더니 자살폭탄 순교했다는 보도를 듣지 못했다. 사담
친위의 페다인부대가 대통령궁 방어로 옥쇄라도 할 기세이더니
여기저기에서 시민들에게 잡혀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있다. 광장의
후세인 동상을 무너뜨린 것도 바그다드 시민이요, 이를 차에 매어 끌고
다닌 것도 그들이며, 그 동상의 얼굴에 망치질하고 그 얼굴을 짓밟으며
"바이 바이 사담! 생큐생큐 부시!"를 외치며 춤추는 것도 그들이다.
후세인 아들의 집을 위시한 고관들의 집을 약탈·방화하고 다니는
바그다드는 지금 폭도(爆都) 아닌 폭도(暴都)가 돼있다는 외신이다.
독재자의 카리스마, 그 공통분모로써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 신짝 하나
얼굴에 얹어놓고 가로누워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