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자살군단

bindol 2022. 11. 7. 07:35

[이규태 코너] 자살군단

조선일보
입력 2003.03.31 19:59
 
 
 
 

이라크전에서 드디어 몸에 자폭장치를 한 자살군단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역대 어느 전쟁보다 통치자와 피통치자, 그리고 군인과
민간인을 갈라 싸워야 하는 이 전쟁에서 이 위장 인간무기는 전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이 자살군단은 사막 전투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산노인부대(山老人部隊)'라는 암살군단이 10세기
전후해서 암약했던 선례를 본뜬 것이다. 이란 아람라트산에 본거지를 둔
이 암살군단은 암살병력을 길러 반대종파의 우두머리들을 암살했고, 그
후 이곳을 침입했던 십자군과 몽골군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 것도 바로
단검(短劒) 하나로 무장한 산노인부대였다. 십자군의 명장 레이먼드
백작이며 예루살렘의 곤래드왕, 사막국들의 대공(大公)들을 암살한 것도
이 산노인 암살군단이었으며 몽골군이 아람라트산성을 점령, 무참하게
학살을 감행한 것도 그 시달림에 대한 보복이었다.

프랑스 문호 뒤마의 '암굴왕'의 주제가 되기도 한 이 산노인성은 그
이전에 마르코폴로가 이곳을 지나면서 그 견문을 적어남겨 알려졌다. 이
산성에 환상적인 궁전을 짓고 과수 틈에 꿀과 젖이 흐르는 사이로
미녀들을 거닐게 하여 천국을 지상에 재현해 놓았다. 그러고서 청소년들
눈을 가리고 이곳에 납치, 대마초를 먹여 환각을 일으키게 하고 천국으로
착각케 한다. 신선처럼 차린 산노인은 이들을 자객(刺客)으로 내보내면서
성공하면 이 천국에서 영생한다는 심증을 준다. 암살자를 뜻하는 영어
'어새신'이 대마초를 뜻하는 '해시시'에서 비롯된 것이라던데 바로
이 산노인성에서 맺어진 연관이다.

지금도 '독수리의 둥지'라는 뜻의 이 암살교단의 본거지가 폐허로
남아있음을 보았으며, 이 밖에도 150여개의 산노인성이 흩어져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이 암살교단의 위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10세기에 시작된 이 암살작전이 산발적으로 명맥을 잇다가 그 1000여년
후인 이번 이라크전에 자살군단으로 부활한 셈이다. 후세인 대통령을
수호하는 친위부대를 페다인부대라고도 부른다던데, 페다인이란
헌신자(獻身者)란 뜻으로, 바로 이 암살교단 자객의 미칭인 것만 미루어
보아도 그 맥락을 알 수 있으며, 그 자살순교를 자임하는 페다인이
4000명에 이른다 하니 험난해진 이라크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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