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파병

bindol 2022. 11. 7. 07:34
조선일보 | 오피니언
 
 
입력 2003.04.01 19:57:57 | 수정 2003.04.01 19:57:57

이라크 비전투부대 파병을 두고 찬반 국론이 전에 없이 열기를 더하고 있다. 조국을 광복시키고 공산주의 남침에서 수복해준 미국에 대한 의리론과 한반도 평화의 관건이 되고 있는 북핵문제 해결이나 앞으로의 경제문제에 있어 미국과 등져 이로울 게 없다는 실리가 찬성론을 주도하고, 유엔의 동의를 얻지 못한 명분 없는 전쟁이요, 미국의 침략전쟁에 가담할 수 없으며 세계적으로 열기를 더해 가고 있는 반전 무드가 총선과 맥락되어 반대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상 명나라의 파병 요구가 있었을 때마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해준 재조지은(再造之恩)으로 국론이 갈라진다는 법은 없었다. 청나라에 쫓겨 철산 앞섬에 든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이 군량을 청해 왔을 때 서북지방 토지 한 결(結)당 한 말 닷 되씩의 소위 모량미(毛糧米)를 청나라를 의식하지 않고 대주었던 것도 그것이다. 직접 재조지은을 입었던 선조(宣祖)는 평생 서쪽에 등을 대는 일이 없었다던데 바로 우리나라를 구해준 명나라 신종(神宗)을 의식해서였다. 다만 북방에서 세몰이를 하고 있는 청나라의 발굽에 유린당하지 않고자 광해군이 명나라의 파병 요구를 두고 양면 정책을 쓴 적은 있다. 권식(權拭)의「강로전(姜虜 )」에 보면 청나라의 전신인 여진이 세력을 키워 가고있을 때 명나라의 파병 요구가 있었고, 그에 응해 대병을 이끌고 압록강을 도강한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姜弘立)은 여진 통역 세 사람을 몰래 불러 여진군총사령관인 누르하치에게 밀서를 보내 우리나라가 군사를 일으킨 것은 명나라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면서 투강했다. 조정에서 이 파병이 논의되었을 때 재조지은으로 파병을 주장한 비변사(備邊司)와는 달리 광해군은 훈련되지 않은 우리 군사를 적지에 보낸다는 것은 호랑이굴에 양떼를 몰아넣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고 이 파병이 적의 노여움으로 우리나라 땅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우환만 안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었다. 결국 양다리를 걸쳐 겉으로는 대군을 파병하고, 속으로는 투항케 함으로써 막대한 병력만 손실시켰던 것이다. 이처럼 파병에는 명분과 내외 분위기, 그리고 장·단기의 실리 등이 맥락되게 마련이다. 옛 것을 비춰 오늘을 본다 해서 역사를 통감(洞鑑)이라 했다. 선량들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파병의 역사로 오늘의 국론을 통감, 찬반투표에 임해야 할 것이다. (李圭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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