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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전쟁과 괴질

bindol 2022. 11. 7. 07:40

[이규태 코너] 전쟁과 괴질

조선일보
입력 2003.03.28 19:35
 
 
 
 

중국 광둥에서 발생한 ‘수수께기의 폐렴’이라는 괴질이 중국 본토에서 대만·홍콩·싱가포르·베트남·태국으로 남하하고 영국·독일·아일랜드·스위스·슬로베니아·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으로 서점(西漸)하는가 하면 미국·캐나다로 동점(東漸), 온세계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라크 전쟁만 아니면 온 세상이 떠들썩했을 이 괴질은 감기 증상을 보이는 고열·두통·목구멍통·기침을 동반하는, 닭이나 칠면조의 조류가 옮기는 바이러스다.

발생지인 광둥에서 홍콩에 온 한 손님이 묵은 호텔의 같은 층에 머물렀던 일곱명의 손님이 발병한 것으로 미루어 접촉없이 한층에 머무른 것만으로도 전염된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이 괴질과의 전쟁은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었다. 희랍의학 연구의 권위자 존 박사는 ‘말라리아와 희랍사’에서 페르시아의 대군을 물리쳤던 희랍 사람들이 로마 군단에 힘없이 무릎꿇은 이유로 때마침 그 지역에 유행했던 괴질로 전의(戰意)의 10분의 9를 상실한 때문이라 했다. 그리고서 모기가 그 위대한 희랍 문명을 붕괴시켰다 했다. 1310년대 유럽에 쥐가 전염시키는 괴질로 유럽 사람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바로 그 시대의 유럽은 온통 전쟁에 휩싸여 있었다. 1세기 동안 싸워온 영·불(英·佛) 간의 전쟁에서 영국 병사는 이 괴질에 감염, 10명에 1명꼴로 죽어가 휴전을 불가피하게 했다. 한편으로 헝가리·스페인·독일·폴란드·러시아·비잔틴제국·몽골이 이 괴질로 전쟁을 중지하기에 이르렀다. 쥐가 전염시키는 이 괴질을 두고 작가 페트라르카는 서양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살생한 전쟁영웅은 쥐라 했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진격때 방수 장화 신기는 것을 깜박 잊어버린 그의 당번병이야말로 러시아의 구세주라고 비꼬았다. 왜냐 하면 그 때문에 나폴레옹이 감기에 걸려 보로디노 전투에서 패배를 안은 것은 역사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볼셰비키 혁명이 진행 중이던 전후에 러시아에는 괴질로 최고 3000만명의 환자가 발생, 그 중 10%가 죽어나갔다. 이가 전염시키는 발진티푸스였다. 이때 혁명지도자 레닌은 말했다. ‘사회주의가 이를 격파시키느냐, 이가 사회주의를 격파시키느냐 둘 중 하나다’라고ㅡ. 모래 폭풍에 이어 이 새가 나르는 괴질이 이라크 전쟁의 복병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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