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모래 폭풍

bindol 2022. 11. 7. 07:41

[이규태 코너] 모래 폭풍

조선일보
입력 2003.03.27 20:14
 
 
 
 

바그다드에 있는 이라크 국립박물관에 가면 이라크인의 조상인 슈멜인
부부상이 눈을 끈다. 커다란 두 눈과 기다란 수염이 현대 화학전에
대비해 방독면을 쓴 것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염이
아니라 모래폭풍을 방어하는 얼굴덮개라는 설까지 있다. 더러는 방독면이
등장하는 이라크전을 기원전에 예언한 석상이라 하여 주의를 끌기도
했다. 그만큼 모래폭풍이 심한 이라크 사막이다.

사막에서 싸웠던 로렌스의 기록에 보면 모래폭풍은 마치 검은 갈색 벽이
밀려들 듯하고 털색이 같은 낙타가 그속에 들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모래폭풍을 만나면 운반수단인 낙타를 상실한다는 것이 우선되는
공포다. 모래폭풍을 역풍으로 안고 걸어야 한다면 허리를 직각으로 굽혀
바람의 저항을 극소화하고 세 발 뒤로 떼밀렸다가 한 발 전진하는 그런
속도다. 얼굴을 들면 마치 밤송이가 강풍에 날아와 치는 듯한 통증
때문에 비명을 지르게 되고 얼굴가리개를 하지 않으면 자상(刺傷)으로
피가 흐르곤 한다. 텐트는 바람에 깃발처럼 찢겨 나부끼고 텐트 속에
들어가 있으면 깜짝할 사이에 모래에 싸여 생매장당할 뿐 아니라
생매장당한 현장을 찾는다는 건 템스강에 던져진 반지 하나 찾는 격이
된다. 너무 지쳐 숨을 고르고자 걷는 것을 멈추면 잠깐 동안에 허리까지
묻혀 누군가가 부축해주지 않으면 빠져나오지 못한다.

우리나라 황사(黃砂)의 진원인 고비사막이나 타클라마칸사막의
모래폭풍도 매 한가지다. 당나라 때 이 곳을 지나갔던 현장법사도
모래폭풍을 이렇게 적고 있다.「모래폭풍이 부는 곳마다 길이 묻혀
사라지고 사면이 망망하여 동서남북을 분간 못하며 모래에 묻혀 죽은
사람들의 해골무지로 도표를 삼곤 했다. 모래폭풍은 소리도 을씨년스러워
때로는 곡녀(哭女)들의 곡소리 같고 때로는 광녀(狂女)의 기성 같기도
하여 이에 홀려 실성하거나 죽은 사람이 나타나곤 한다. 아마도 원한
품고 죽은 귀신들이 모래폭풍 타고 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제공권을 마비시키고 탱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병사들로 하여금 이라크 박물관의 슈멜인 같은 얼굴가리개를 한 채 탱크
그늘에서 잠을 자게 하는 모래폭풍은 아랍권에서는 알라의 저주로 여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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