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폴란스키
요즈음 청소년들은 키도 크고 다리도 길어지는데 가슴만은 좁아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콩나물 키, 롱 다리, 새가슴인 셈이다. 마음이
들어가 있을 상자인 가슴은 사람에 따라 크거나 작기도 하고, 둥글거나
모나기도 하며, 희석되거나 부풀기도 한다. 거지 몰골이 되어 찾아온
이도령을 보고 월매(月梅)가 한 말이 생각난다. '거지 중의 왕거지인데
떡 벌어진 가슴을 보니 뭣인가 들어있는 것 같다'는…. 반면에
뺑덕어멈은 새 주둥이에 새가슴을 하고 있다고 하듯이, 고전소설에서
소인배는 가슴 좁은 것으로 비유하게 마련이다. 왜 청소년들 마음의
상자가 작아져갈까. 맨 먼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중독돼 부모형제나
친구들과 담쌓고 제 방에 콕 박혀 사는 '방콕족' 신드롬을 들 수 있다.
사람을 부산히 접함으로써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심덕(心德)이 자라고
남과 부산히 접하여 희비애노(喜悲哀怒)의 심정(心情)이 활성화되는데,
이 가슴을 채울 근본 소재와 담쌓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들라크루아의 명화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젖가슴을
노출시키고 있다. 성 아가다는 젖가슴을 절제당하는 것으로 순교했다. 곧
가슴 안에 자유와 정의, 신앙과 정열이 들어 있기에 그것을 노출하고
그것을 절제한 것이다. 우리 대중가요 가사의 10대 빈도 단어 가운데
'가슴'이 든다. 아픈 가슴, 쓰라린 가슴, 찢어지는 가슴 등등 외상을
입어서 아프고 쓰라린 것이 아니다. 가슴이 크다는 것은 포용을, 가슴을
편다는 것은 희망을, 가슴이 뛴다는 것은 흥분을, 가슴이 벅차다는 것은
감격을 뜻하리만큼 한국인의 심정 고갈을 가시화하는 작아진 가슴이다.
프랑스 세자르상 6개부문 영화상을 석권하고 엊그제 아카데미 감독상을
탄 「피아니스트」의 감독 폴란스키의 작품에 「상자와 두 사나이」라는
게 있다. 바다에서 두 사나이가 큰 상자를 맞들고 나와 불안정하게
비틀거리며 놓을 자리를 찾아 헤맨다. 놓으려 들면 거절당하고 밀치이고
쫓기며 심지어 쓰레기통에서마저도 거절당한다. 주인 없는 땅에 몰래
놓아보니 전후좌우로 기울고 삐딱빼딱 안정이 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두
사나이가 이 상자를 들고 바다로 되돌아간다는 줄거리다. 심덕과 심정이
건포도처럼 메말라 아무 데에서도 조화할 수 없을 만큼 모나고 작아진
현대인의 마음 상자를 그린 폴란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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