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인간 방패
이라크를 포위하고 있는 미군 사령관은 전쟁이 시작되면 폭격 목표에
숙박하고 있는 인간방패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언명했다. 지금
이라크에는 20개국에서 300여명의 인간방패들이 발전소, 정유공장,
수도시설 등에서 숙식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11명의 지원자가 참여하고
있다 한다. 지난번 걸프전쟁 때 쿠웨이트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했던
외국인들을 이라크측에서 거두어 발전소 등 요지에 수용, 폭격을 피하려
했던 적이 있으며 구미(歐美)의 반전운동가들은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에
들어가 소규모의 인간방패운동을 벌여왔다.
인간방패운동의 시작은 기원전 400년으로까지 소급된다. 승세를 몰아
아테네성을 포위한 스파르타군은 그 성을 한쪽부터 헐기 시작했다. 이때
굳게 닫혔던 성문이 열리고 피리 부는 여인을 앞세운 아녀자들이 손에
손을 묶고서 아테네성을 둘러쌌다. 곧 인간방패로 성을 쌓은 것이다. 이
광경을 두고 크세노폰은 이렇게 적어 남겼다. '스파르타의 그 강한
사기나 화살도 인간 방패 앞에서는 무력했다'고. 임진왜란 때
함경도까지 북상한 왜군이 회령을 점령하자 이곳에 유배당했던
국경인이란 자가 반란을 일으켜, 이곳에 피란 와 숨어있던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 두 왕자를 잡아다 왜장에게 바치고
투항을 했다. 그후 왜군은 이 두 왕자를 인간방패로 활용함으로써 작전을
교란시키고 아군을 곤혹하게 했던 것이다.
강한 자에 대한 약한 자의 저항수단으로 민간에서도 자주 이용돼온
인간방패이기도 하다. 한말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영친왕(英親王)을 인질로 잡아 일본으로 데려간다는 소문이 돌자 영남
선비들이 손깍지를 서로 끼고 인질열차가 달리는 경부선 철로 위에 누워
기차를 급정거시키길 20여번이나 했다. 지맥(地脈)과 수맥(水脈)을
소중히 여겼던 조상들은 이 맥을 끊는 철도공사 수원지공사에 저항해
풍수전쟁을 자주 일으켰는데 이때 동원된 인간방패가 부녀자로 이루어진
낭자군(娘子軍)으로 몸을 한 데 묶고 현장에 누워 공사를 방해했던
것이다.
지금 이라크에 모여든 이 방패들에게 이라크 정부는 모든 편의를
보아주고 숙식과 교통을 전부 무료로 이용하게 해주고 있다. 운동의
순수성을 훼손시킨다고 하여 일당 5달러씩 내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실행되지 않고 있다고 하니 평화의지가 전략에 이용당한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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