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코너] 운명 성형수술

bindol 2022. 11. 10. 16:34

[이규태코너] 운명 성형수술

조선일보
입력 2003.02.26 21:15
 
 
 
 


관상이나 수상을 성형하여 인생의 운세가 바꿔지는 것일까. 두 번이나
자살미수를 한 40세의 오스트리아 여인이 손의 연구로 유명한
문화인류학자 월터 소렐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20세 때 집시
점쟁이에게 손금을 보였는데 생명선에 두 번의 단절이 있어 30세와
40세에 생명의 위기를 맞는다는 예언을 받았다 했다. 이에 소렐은 간단한
수술로 손금을 휘어주었더니 아주 쾌활해져 미국에 건너가 성공적인
여생을 살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사람이 당하는 재난은 그렇게
당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조작된 운명에
빠져들고 있다' 하고 관상·수상·운명론의 부질없음과 성형으로
운명이나 팔자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과 허구를 지탄했다.

이미 인도에서는 1000여년 전부터, 유럽에서는 16세기부터 운명성형이
성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쇼펜하우어는 '많은 여성의 미뿐만 아니라
운명은 그녀들 코의 곡선의 상하향(上下向)이 지배한다'고 했다.
독일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도 관상이 운명을 지배할 것으로 확신하는
주인공으로 하여금 그 변형으로 인생행로를 바꾸려는 주제의 소설을
남겼음으로 미루어 운명을 가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유럽에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한(漢)나라 고조는 왼쪽 사타구니에 73개의 검은 사마귀가 나 있었다
한다. 사람 눈에 띄지 않은 곳의 73개의 사마귀는 제왕에 오를 상서로운
상이나 7+3=10으로 운이 꽉 차 장래가 없다 하여 사마귀 하나를 빼
72개로 했으니 이 또한 운명성형이 아닐 수 없다. 팔도에 소문난
관상가들이 수명을 예언한 사례가 사서에 더러 나오는데 그 예언한 날에
죽지 않으면 운명을 바꿔놓는 조건들을 들어 합리화하게 마련이었다. 그
조건 가운데 하나가 살면서 남에게 알리지 않은 선행의 축적이었으니
이는 관상 아닌 심상(心相)의 성형이었다 할 수 있다.

근간에 미모를 위해서보다 일이 안 풀린다든지, 불행한 일이
잇따른다든지 하면 팔자 탓으로 돌리고, 이마가 좁다든지, 콩구멍이
크다든지 턱이 빠르다든지 하는 외모를 수술하는 운명성형이 성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각종 시험장의 면접에서 원서에 붙은 사진과 실제 인물이
너무 차이가 나 동일인 확인을 위해 예상외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작금의 상식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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