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88> 씨앗과 씨드 ; 종자와 다른 포자

bindol 2022. 11. 14. 08:08

포자식물 포자와 다른 종자식물 종자=씨앗=씨드

파리와 플라이(fly)는 별 연관성 없이 우연히 발음이 비슷해진 걸까? 태풍(颱風)과 타이푼(Typhoon)은 연관성 있는 뭔 인연으로 발음이 비슷해진 걸까? 씨앗과 씨드(seed)도 발음이 비슷하다. 우연일까 인연일까? 곰곰이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발음이 너무 비슷하고 인연이라 하기엔 일말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다만 연관성의 실마리를 희미하게나마 찾는다면 어떤 근본이나 원천을 씨(si)로 발음하는 한국인과 서양인의 인간적 공통점이 있었던 듯싶다.

대개 곡식이나 과일 채소의 씨를 씨앗이라 부르지만 씨앗도 씨다. 한자로 종자(種子)다. 성(姓)을 뜻하는 씨(氏)도 따지고 보면 인간이 구별 목적으로 이름 지은 개별적 가문의 종자다. 식물의 종자인 씨는 순우리말이다. 식물이 번식하려고 결실 맺은 한 알의 생명체다. 씨를 씨알이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씨알도 안 먹힌다는 말에서 씨알은 말을 씨부리다의 ‘씨’이거나 베틀에서 옷감 짤 때 씨실의 ‘씨’ 아닐까? 말빨이 잘 안 먹히거나 세로줄 날실에 가로줄 씨실이 잘 안 먹힐 때 그런 말을 쓰는 걸지 모른다. 그와 달리 씨앗이자 씨알인 씨(seed)는 생명의 알갱이이거나 덩어리다.

식물이 꽃을 피워 열매 맺으며 키워낸 씨알 한 알 한 알에는 암술의 밑씨가 수술의 꽃가루를 수분(受粉)하여 잉태된 유전자 세트가 들어 있다. 음양의 완벽한 화합이 씨다. 생물학적 표현으로 세포핵 안 염색체 상인 핵상(核相)이 2n이다. 음인 암술로부터 한(1n) 벌, 양인 수술로부터 한(1n) 벌을 받았으니 2n이다. 동물의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인 수정란(受精卵)도 2n이다. 아기의 궁(宮)인 자궁 속 수정란으로부터 아기가 자라 태어나듯이 씨의 방(房)인 씨방 속 씨가 퍼져 새싹이 피어난다. 민들레도 마찬가지다. 민들레 씨를 민들레 홀씨라 하는데 틀린 말이다. 유행가 제목에 따라 그냥 관습적으로 그리 말하는 거다. 민들레 씨는 1n의 홀씨가 아니라 2n의 짝씨다. 깃털을 지닌 민들레 씨가 날아가 어딘가 자리잡아 뿌리내리면 씨의 배아에 담긴 음양(2n)의 생명정보대로 민들레가 예쁘게 피어난다.


씨든 씨앗이든 씨알이든 씨드는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을 포함하는 종자식물의 유전체다. 포자(胞子)식물은 종자(種子)식물과 달리 번식한다. 포자식물에 속하는 고사리는 벌과 나비를 꼬실 꽃이 없으니 암술도 수술도 씨방도 없다. 고사리 잎 밑면을 보면 누런 알갱이들이 있다. 2n 종자인 씨(seed)가 아닌 1n 홀씨인 포자(spore) 주머니다. 홀씨들 주머니인 포자낭이 터져 홀씨가 떨어지면 무성생식하여 난자와 정자의 암수 구분이 있는 작은 싹이 튼다. 드디어 정자가 난자쪽으로 헤엄쳐 가서 음양의 암수가 통하면 유성생식하여 2n의 어린 고사리 새싹이 피어난다. 이후 고사리 염색체가 감수분열하여 1n의 홀씨 포자를 만든다. 이 포자를 통해 고사리는 후세를 이어간다. 종자식물이 성장 후 꽃에서 체내 수분하지만 포자식물인 고사리는 성장 전 땅에서 체외 수정한다. 이상한 생식이자 번식이다. 고작 수만 년 살아온 인간과 비교해서 수억 년 살아온 고사리를 깔보면 안 된다. 고생대 데본기에 출현하여 4차에 걸친 대멸종을 버티며 번성한 강인한 생명체다. 밥상에서 고사리 나물만 맛있게 먹기보다 숲속에서 고사리를 유심히 보며 놀랄 만하다. ‘민들레 홀씨 되어’가 아니라 ‘고사리 홀씨 되어’란 노래를 지어 부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