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울력과 눈 쓸기
시골에는 저녁 먹고 모이는 사랑이 있는데 노인들 모이는 노사랑,
아이들 모이는 아사랑, 그리고 10대 청소년이 모이는 울력방이라는 게
따로 있었다. 모여서 잡담하고 놀기도 하며 새끼도 꼬고, 짚신도 삼고,
잠도 자곤 했다. 왜 울력방인가는 우리 고유의 청소년문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실마리를 주고 있다. 울력이란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서 하는
일이나 그 힘을 뜻하며, 울력집이란 협동작업을 하기위해 모인 집회소란
뜻이다. 「울력 걸음에 봉충다리」란 속담이 있는데 힘을 합쳐 일하면
평소에 하지 못하던 일을 해낸다는 뜻으로 원시사회에 있었던
청년집회소(Mens House)의 한국적 잔재가 아닌가 싶다. 이미
삼한시대부터 일정 나이에 이르면 성년식을 치르고 청년의 집에 들어
공공성의 공동작업을 해야 성인으로서 인정받았다. 무거운 바윗돌을
들어올리는 등 성년식을 통과해야 울력집 나들이를 하게 되고, 반품이
온품으로 올랐던 것으로 미루어 근대판 청년의 집이랄수 있다.
이 울력집에서 하는 일이 홀로 된 노인이나 과부 고아 등 노동력이 없는
집의 농사일 돕고 나무를 해대는 일이다. 또한 환난(患難)이나
애경사(哀慶事)를 당한 집에 가 모자란 일손을 도왔다. 그 울력 가운데
하나가 눈이 내리면 마을 길 쓰는 일이었다. 눈 쓰는 길이 분담돼 있기에
울력을 게을리하면 바로 소문이 난다. 따라서 품을 파는 데 기피를
당하고, 후에 혼담이 오갈 때 악조건이 되며, 머슴으로 고용될 때 새경
흥정에서 감점으로 작용한다. 전통 촌락에서 사는 데 울력은
생존조건이요 한국적 인성교육의 밑거름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는 집 앞 인도에 가랑잎이나 눈이 내리면 네 시간 안에 쓸어서
한데 모아두어야 하고 모아두면 시청 차가 차례로 실어다 치운다. 쓸지
않으면 시청 청소부가 치우고 과태 벌금고지서가 날아든다. 몇
십달러에서 최고 500달러까지 되기에 눈 쓸 인력이 없는 노인 가족은
이웃 아이들에게 벌금보다 한결 값싼 아르바이트 약속으로 눈을 치웠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아름답던 울력 정신도 사라지고 그를 대체하는 시민
정신이 성숙한 것도 아니요, 남의 공간으로 버려진 내 집 앞길에 대설은
쌓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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