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한국의 절수문화
갑신정변의 행동대로 활약했던 이규완(李圭完)은 을사조약 후에
함경도와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어느날 갓 시집온 며느리에게
물었다. "빨래는 어데서 하느냐"고. 개울에 들고 나가서 빤다고 하자
"안 되니라. 작고 큰 빨래 할 것 없이 반드시 집안에 있는 샘에서 빨고,
빨고 난 땟물은 버리지 말고 두엄터에 끼얹어라" 했다. 새 며느리에게
내외를 시키고자 집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비록 하찮은 때를
빤 물이라도 버리지 말고 보이지 않는 때일망정 거름으로 이용하라는
근검의 표출이다.
혼담이 오가면 중신아비로 하여금 예비 신부의 성행을 염탐시키는데 그
중 하나가 샘에서 물을 기를 때 물동이를 다 채우고 남은 두레박의 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보게 한 것이다. 조금 남은 물이라 하여 버리면
감점이다. 법도 있는 집안에서는 남은 두레박 물을 샘에 다시 붓게
가르쳤다. 솟아나게 마련인 샘물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림에서
근검하는 마음의 틀이 잡혔나 여부를 그에서 보았던 것이다. 전통
가정에서 생활하수는 이처럼 한 방울도 헛되게 버리지 않았다. 쌀 씻은
뜨물, 먹다 남은 국물, 설거지 하수 등 모조리 부엌 문전에 놓인 궂은
물통에 버렸다가 겨에 섞어 돼지에게 먹였다. 생활하수의 근검은
생리하수 처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어릴 적 밖에 나가 놀더라도 반드시
집에 돌아와 오줌을 누도록 누누히 듣고 자랐다. 집에 돌아오기 바쁘면
가장 가까히 있는 제 집 논밭에 가서 누도록 했다. 아무데나 누면 고추
끝이 붓는다는 금기가 붙어 있기까지 했다.
물을 많이 쓴다는 목욕문화도 절수목욕으로 비상하게 발달했었다. 소의
밥통인 구시에 물을 붓고 바가지로 퍼 쓰는 목욕재계도 물을 많이
낭비한다 하여 제장(祭場)에 차려놓은 대야물에 두 손을 담그거나 이마에
물을 찍어 바른 것으로 의식화했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 목욕도
발달했는데 악담을 들으면 귀를 씻는 귀씻기(洗耳), 못 볼 것을 보면
눈씻기(洗眼)로 부정을 씻곤 했는데 이 모두 절수목욕의 연장이다.
유엔에서는 올해 물의 해를 맞아 엊그제 지구 물 부족 백서를 발표했다.
이대로 물 소비가 지속된다면 40년 후에는 인류 절반이 목타게 된다고
경고했는데 우리 조상들만큼만 절수하면 유엔의 경고는 기우(杞憂)가 될
것이다.
(kyoutae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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