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한 하늘 세 태양

bindol 2022. 11. 14. 15:38

[이규태 코너] 한 하늘 세 태양

조선일보
입력 2003.01.24 19:14
 
 
 
 


베이징 특파원의 보도에 의하면 중국 신장(新疆)성에 동시에 3개의
태양이 나타나는 희귀한 일이 벌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공중의 얼음
결정체가 태양의 빛 무리를 받아 일어나는 반사현상이라는 과학적 설명을
했지만 동서를 잇는 고대 신화를 해석하는 하나의 실마리를 던져주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대 중국의 성군(聖君)인 요(堯)임금 때 10개의
해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변이 있었다. 계속되는 한발에 지상의 수목이
타고 사람이며 짐승들이 새까맣게 타 죽어갔다. 이에 천제(天帝)가 활
잘쏘는 예( )를 내려보내어 열 개의 해 가운데 아홉 개를 차례로 쏘았다.
해 속에 산다는 세 발 까마귀가 차례로 화살을 맞고 죽어 떨어지며 아홉
개의 해가 사라졌다. 옛 중국사람들은 열 개의 해가 있어 몇개씩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세 개의 해가 동시에
나타났다느니 두 개의 해가 동시에 나타났다느니 하는 기록이
「죽서기년(竹書紀年)」 「태평어람(太平御覽)」 등 문헌에 나온다.

태양을 쏜다는 신화는 희랍에도 있었다. 영웅 헤라클레스가 제우스신의
명을 받들어 아홉 가지 백성을 구하는 일을 해내는데 그중 태양신인
헤리오를 쏘아 죽인다. 예( )의 중국과 헤라클레스의 그리스와는 거리가
있지만 신화의 발상이나 진행이 흡사함을 알 수 있다. 그 중간에 자리한
인도에도 복수의 태양 이야기가 있어 신화의 다리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12개의 해가 나타나 대지를 태우고 세상을 멸망시켰다는 인도의
설화가 불교에도 수용되어 수미산 인근에 4개의 세상이 있었는데 7개의
해를 보내어 파괴시켜버린 것으로 돼있다. 다시 인도와 그리스를 잇는
아시리아에도 6개의 아우(弟) 해가 하나의 형(兄) 해를 따라 나타나
난세의 조짐으로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인도의 7개의
해와 무관하지 않은 것만 같다.

미국 인디언 전설에도 10개의 해가 동시에 나타났는데 코요테가 그중
9개를 잡아먹고 하나만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있고 남미 페루에도 5개의
해 가운데 4개를 쏘아 없앴다는 이야기가 있으므로 다수의 해 출현과
이를 쏘아 재앙을 없앤다는 유형의 신화는 세계적인 분포를 하고 있으며
다수의 가태양(假太陽) 물리현상이 동서고금에 일어났었다는 방증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