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할머니 파워

bindol 2022. 11. 15. 08:38

[이규태 코너] 할머니 파워

 

조선일보
입력 2003.01.21 20:14
 
 
 
 


세계적 할머니 운동인 '회색 표범'의 창시자 트루데 운루 할머니는
거꾸로 매달린 모노레일로 유명한 독일의 우퍼타르 교외에 살고 있었다.
노인 권익에 불리한 시책이나 법안이 나오면 운루 할머니는 발의한
의원이나 장관 집에 몰려가 출입문을 X자로 틀어막고, 저(底)연금
노인들의 돈을 모아 주무 장관집의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 행동파
맹렬 할머니다. 할머니는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관리당하며 살아야 하는
노인 홈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었으며 갈 곳 없는 할머니 5명을 수발하며
가족적 환경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수백만명의 지지자를
거느리고 있었으며 이 할머니 운동을 돕는 변호사만도 300여명이 된다.
노부모와 더불어 살며 공양하는 한국의 전통적 삶의 질이 인류가
지향하는 이상이라던 할머니다.

얼마 전 미국 몬태나주 미즐라에서 이라크에의 무력행사를 반대하는
반전집회가 있었다. 자네트 랜킨 평화센터가 주최한 집회로 미국 전역에
반전 무드를 확산시키고 있는 할머니 파워다. 1917년 미국의회에서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결의를 할 때 유일한 반대표가 나왔는데 유일한 여성
의원이던 자네트 랜킨이 던진 표였다.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이
있던 이튿날 미국상원에서는 만장일치로 대일본 선전을 결의했는데
하원에서는 단 한 의원의 반대표가 나왔다. 바로 그 자네트 랜킨
의원이었다. 랜킨 의원은 매국노로 매도당하고 협박에 시달렸으며 고향에
돌아오지 말라는 가족의 절연장을 받기까지 하면서 반전 소신을 지켰다.
1968년에는 87세의 노령으로 5000여 여성들 선두에서 베트남 반전 운동을
주도한 할머니 파워의 상징적 인물로 사후인 지금도 그녀는 반전운동의
부싯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신대 출신 할머니들의 일본측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가 금주로
541번째로 11년간 계속되고 있다. 이 항의 집회를 시작했을 때 70대였던
할머니들이 지금은 부축 없이 거동 못하는 80대로 접어들었고 시작할
무렵 200명이던 할머니 가운데 76명이 한을 못 풀고 돌아가셨다. 이만한
노령에 그만한 끈질긴 집념을 표출시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원한의
크기를 말해주는 것이 된다. 이처럼 할머니들은 인간파괴의 외적 침해
요소들에 파워 행세를 하고 있는데 동서가 다르지 않음에 숙연해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