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휘파람 분 여인들

bindol 2022. 11. 15. 09:00

[이규태 코너] 휘파람 분 여인들

조선일보
입력 2002.12.26 19:30
 
 
 
 


팔짱을 낀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거부나 항의의 몸짓말인데 동서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어른 앞에서 팔짱 낀다는 것을 버릇없다 여긴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의 송년호 표지에 세 명의
여인이 당당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데 해마다 뽑는 올해의 인물로 이 세
여인이 뽑혔기 때문이다. 뭣에 대한 항의를 했기로 팔짱들을 끼고 있는
것일까. 휘슬블로워즈ㅡ 곧 휘파람 부는 사람들이라 했는데 경고를 발한
사람이란 뜻도 있고 고발을 한 사람이란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다. 곧
자신들이 속해 있는 회사나 기관의 회계부정이나 부당한 처사를 폭로하는
내부고발자 3인방이다. 부정이나 부당은 악이요, 악을 제거하는,
장려돼야 할 용기있는 행동이긴 하다. 하지만 한 품 안에서 상부상조하는
한 직장에서 그 직장을 곤혹하게 하거나 파국으로 몰아넣는 그 고발
행위는 반(反)윤리적인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규범이 중요한 이동성
사회에서는 전자에 가치를 두지만 의리가 중요한 정착성 사회에서는
후자가 중요하다. 곧 동서의 의식구조가 상충하는 내부고발이다.

인조(仁祖)7년 김경현이라는 아전이 그의 누이동생이 보낸 한글편지를
근거로 그 누이의 남편 김홍원이 다른 3명과 모반을 공모했다고
고변(告變)을 했다. 국가 변란을 미리 알리는 중대사인데도 인조는 음모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도대체 남편을 고발하는 여인이 생겨난 것을
한탄하고 아무리 미천하기로서니 어찌 지아비를 고발할 수 있는가 하고
국가변란보다 강상(綱常) 무너진 것을 보다 중요시, 이 내부 고발자를
잡아 가두게 했다. 미국 같으면 김홍원의 아내는 용기있다 하여
표지인물이 됐겠지만 조선시대의 휘슬블로워는 갇힌 몸이 돼야 했다.
우리나라 법전인 경국대전이나 대전회통에 이 같은 자손, 처첩, 노비가
부모나 지아비를 고발하고 아전이 상전을 고발하면 중죄로 처단한다고
명시돼 있다.

아들을 잡아다 아버지의 죄를 추궁하고, 노비를 잡아다 상전의 죄를
추궁해도 그 관부의 우두머리를 처벌했다. 완풍부원군인 이서(李曙)와
병자호란의 대공신 호조판서 최명길(崔鳴吉)은 부하가 내부 고발을
유인했다 하여 징계를 받기까지 했다. 이렇게 닫힌 사회의 윤리가 열린
사회의 가치관에 유린돼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타임'지의 여인
삼인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