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막걸리 먹는 소나무
서부 개척자들은 개척예정지에 여러 묘목을 심어놓고 3~4년 후에
가본다. 어느 나무가 잘 자라고 못 자라는지로 목장이면 말이 잘
자라는지 소가 잘 자라는지를, 작물이면 밀이 잘 되는지 옥수수가 잘
되는지를 알고 정착 여부를 정했던 것이다. 그만큼 나무는 더불어 사는
사람이나 동물 식물과의 상생(相生) 상극(相剋)에 민감했다. 나무와
사람의 성향은 닮는다 하여 나무이름으로 특정인을 대명하는 관행도
있었다. 이를테면 제퍼슨은 진취적인 오크나무, 휘트먼은 고독을
좋아하는 미루나무로 불렸다. 그 정치가의 집은 오크나무 숲 속에, 그
시인의 집은 미루나무로 싸여 있었다.
그것이 섭리라면 한국인은 소나무다. 태어나면 선산에 그 몫으로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를 나의 운명을 대변한다 하여 내나무라 했다.
튼튼하게 자라면 무병장수를, 무성하게 자라면 번창을, 솔방울이 많으면
자복(子福)을 예언받았다. 등나무를 곁에 심어 등줄기가 잘 감아오르면
부부간의 금실이 좋은 것으로 가늠하기까지 했다. 아프면 왼새끼
둘러놓고 빌고, 급제하면 붉은 관띠 둘러놓고 풍장을 쳤다.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 내나무로 관을 짜 묻었던 소나무는 한국인이다. 옮기면
죽을 만큼 소나무의 정착성이 별나게 강한 것도 수천년 한마을에서
태어나 살다가 그 마을에서 죽어 뒷동산에 묻히는 별나게 강한 붙박이
정착성의 한국인과 상생한 때문인지 모르겠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
살아야 무병장수하고 밥도 소나무 장작으로 지어야 가장 맛이 난다.
이처럼 한국인과 동일화된 소나무인지라 수천년 한국인에게 적성화된
막걸리와 상생한다는 것은 합리적이다.
일전 서울 수유리 소나무들에 막걸리 먹이는 이색행사가 있었는데
그로써 잘 착근하고 뿌리가 잘 자라기 때문이라 한다. 땅속 소나무
뿌리에 엉키는 송진을 음지(陰脂)라 하는데 이를 녹이는 데 약한 술이
좋다는 것은 「본초강목」에 나온다. 솔잎·송피·송진·송화·송실을
보약으로 지어먹을 때 반드시 약한 술과 더불어 마신 것도 솔기운이
엉키는 것을 술이 풀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정착성이 유별난 잔뿌리가
이식한 이질 땅을 거부하고 엉켜있는 것을 풀고자 막걸리를 먹인 것일
게다. 소나무와 막걸리 상생(相生)은 문화이론으로도 흥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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