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大使들의 합창
부산 국제 합창올림픽의 전야제에서 주한 외국대사들 16명이 한복
차림으로 합창을 했다. 나라와 문화가 다르고 얼굴색·눈빛깔·목청도
다르며 말도 다르고 음에 대한 감각도 다른 잡동사니가 고운 화음으로
조화를 이루어낸 것은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이탈리아 사람을 빼놓고
서양사람들 노래 못한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부르지도 않으려니와
불러도 들어줄 수가 없다. 이에 비해 한국사람치고 노래 못하는 사람
드물다. 일본에서 시작된 노래방이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극성을 떨어
산간벽지에도 노래방 없는 고을이 없는 것만 미루어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고된 일을 하면서 노래로 그 힘을 덜었고, 억눌려 풀 길
없는 원망이나 슬픔도 노래로 덜었던 가창 민족이다. 이처럼 혼자 부르는
독창은 잘하는데 소리를 보태어 화음을 내는 합창에는 미숙하다. 여럿이
소리를 합쳐 부르는 서도민요나 남도민요가 없지 않으나 그것은 식장에서
애국가 부르듯 한 제창(齊唱)이지 화음을 조화시키는 합창(合唱)은
아니다.
한국사람 개개인은 똑똑하고 유능하지만 모아놓으면 무력하고
무능해진다는 말을 곧잘 듣는다. 남과 다른 나만의 목소리로 나 혼자는
잘 부르지만 그것을 투자하여 남들의 그것과 조화시켜 더욱 크고 고운
아름다움을 창출하지 못하듯, 보다 큰 창조를 위하여 자신의 능력이나
개성을 죽이고 살리는 조절에 미숙한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초기 이민들은 신천지에서 당장 먹고 입고 사는 데 각자의
능력을 출자, 시스템화(化)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했다.
독창(獨唱)하듯 혼자서 집도 짓고 옷도 짓고 밥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요, 합창처럼 톱질할 줄 아는 사람, 베틀 다룰 줄 아는 사람,
장기질 할 줄 아는 사람이 시스템화해야만 한다. 이 시스템화를
체질화시키고자 미국에서는 여러 사람이 힘과 마음을 모아야 겨룰 수
있는 지네발 경주(競走)나 경조(競 )를 어릴 때부터 시킨다. 그만큼
미국은 개성 존중의 합창사회다. 이에 비해 정착 농경사회인 우리나라는
독불나지 않고 그저 오체구족(五體俱足)으로 남나름으로 사는 것을
지상의 가치로 삼는 개성 부정의 제창사회다. 나와 다른 의견이나 반대
의견을 수렴하여 발전시키지 못하고 대결구도로 치닫는―역사도 유구한
우리 정치 고질도 합창 미숙의 소치다. 모든 것이 서로 다른 각국
대사들의 한복 합창은 그런 시각에서 한국인을 향한 문명 고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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