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禁女 解制
사내아이를 낳으면 바다에 띄워 없애버리고 계집아이만을 기르는 여인국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조류 타고 흘러든 궤짝 속의 아이였던
신라 임금 석탈해(昔脫解)도 여인국에서 버림받은 사내아이다. 하지만
남인국 이야기는 없다. 없는 대신 여인을 얼씬도 못하게 하는 금녀의
영역을 너무 많이 만들어놓고 살아온 데는 동서가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희랍의 고대 올림픽에서 여자는 출전은커녕 구경도 못하게 했다. 이
금제를 깨면 높은 벼랑에서 떼밀어 죽이기로 관행이 돼있었다. 아들놈의
복싱경기가 보고 싶어 코치인 양 남장(男裝)하고 잠입했던 어머니가
승리에 격앙되어 함성을 지르는 바람에 발각되었으나 그의 가족에서
7명의 금메달리스트가 나온 것을 감안하여 면죄를 받았었다. 그래서인지
여자가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것은 겨우 100년 전인 제2회 파리 올림픽
때 테니스와 골프경기였다.
교회의 성가(聖歌)도 여성 금제구역이었다. 고음(高音)은 소년
소프라노나 거세(去勢) 소프라노의 몫이었다. 독일 드레스덴의 성십자가
교회에는 500년 전통의 소년 합창대가 있는데 지금도 엄한 기숙사생활로
중세식의 음악 수업과 활동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
가제(家祭)나 부락제, 산제 등 각종 제사를 지내는 성스러운 공간이나
성스러운 시간에 여자의 개입이 금지되었던 우리나라다. 제주(祭主)는
제사 한달 전부터 목욕재계, 아내와 각방을 쓰고 딸·며느리들도
살성(殺聲)이라 하여 소리를 죽여 허스키 보이스로 대화함으로써
여기(女氣) 여색(女色)으로부터 제주의 성(聖) 공간을 보장해야 했다.
떡이나 술을 빚고 제수를 장만하는 여인들도 입을 창호지로 봉하고
작업을 하게 마련인데, 여기·여색 방출을 억제하기 위해서였으니 차별을
넘어선 가혹한 구박이 아닐 수 없었다.
제사 지내는 성 공간의 발원은 제사받을 분의 위패(位牌)다. 그래서
사당이나 서원 등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공간은 여성 소외공간인 데 예외가
없으며, 그 소외 법통을 엄하게 지켰느냐 덜했느냐 없앴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퇴계 이황(李滉) 선생의 권위에 비례해서 지엄했던
도산서원 상덕사(尙德祠)의 여성금제가 사상 처음으로 풀려 여성의 사당
참배가 허락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자도 명인을 알묘(謁廟)하게
됐다는 것보다 여성 소외공간의 마지막 증발이라는 사회사적 측면에서
새겨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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