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반순이

bindol 2022. 11. 21. 07:31

[이규태 코너] 반순이

조선일보
입력 2002.07.23 19:16
 
 
 
 


사람 때가 묻은 야생동물의 비극적 말로에 대한 교훈으로 당나라 학자
유종원(柳宗元)이 지은 「임강(臨江)의 사슴」이라는 게 있다. 임강에
사는 한 사람이 사냥을 갔다가 사슴새끼 한 마리를 잡아왔다. 이를 안고
끼고 애지중지 기르는데 개들이 달려들면 이를 꾸짖고 패고 했기에
개들도 주인 눈치를 보고 사슴 새끼에 아부, 함께 뒹굴고 싸워 져주곤
하며 자랐다. 이렇게 3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집 밖에 나들이를 했다. 뭇
동네 개들이 응얼대자 사슴은 집안에서 하듯 어울려 응석을 부렸다.
개들은 달려들어 물어댔고 사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임강의 사슴은 왜
이렇게 죽어가야 했는지 모른 채 식어갔다.

40여년 전만 해도 설악산 인근마을에서 새끼 곰을 주워다가 기르는
이가 몇 있었다. 그 중 한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새끼 곰이
자라서 암내를 피우기에 곰들이 자주 나타난다는 산 속에 방생을 했다.
한 석달쯤 후 밤중에 장독 깨지는 소리가 나 나가 보았더니 이 방생한
곰이 찾아와 장독 속의 된장을 퍼먹고 있었다. 그 후 열흘거리
보름거리로 찾아왔으며, 돌아올 때마다 이전보다 수척해져 가는 것이
완연했다. 어느 날은 온몸에 상처를 입고 와서 된장도 퍼먹지 않고
앉았다가 돌아가는데 돌아보길 여러 번 하더니 그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다 했다. "산짐승은 산에서 살아야지 집에서 기르는 법 아니여"
하던 그 분 말이 기억난다.

사람이 기른 짐승이 그러하듯이 짐승이 기른 사람도 매 한가지다. 정조
때 흉년을 피해 백두산에 들었다가 눈에 막힌 함경도 경원(鏡原)의
소녀가 곰과 더불어 사는데, 생식을 하니 몸에 털이 나고 추위도 타지
않고 이 나무 저 나무 옮겨다니며 살다가 잡힌 몸이 되었다. 이
모녀(毛女)의 기억을 더듬어 경원 고향집에 데려다 주고 우리에 가두어
인간회복 훈련을 시켰으나 산으로 데려가 달라고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던
것이다.

사람 손에 길러지다가 지리산에 방생된 반순이가 사체로 발견되었다.
환경에 적응치 못하고 굶주려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같이 방생한 다른
암놈 한 마리는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왔고 숫놈 두 마리가 생존해 있으나
그 장래에 임강의 사슴이나 설악산의 곰이 투영되어 야생동물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뭣인가를 새삼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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