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楚腰

bindol 2022. 11. 21. 07:39

[이규태 코너] 楚腰

조선일보
입력 2002.07.16 18:57
 
 
 
 


「전당시(全唐詩)」에 시가 수록된 당나라의 미녀 시인
설요영(薛瑤英)은 신라 아가씨다. 당나라에 들어가 대장군으로 전사하여
당태종이 손수 옷을 벗어 시신을 덮어주었다는 설계두(薛 頭)의 딸로
실학자 이덕무(李德懋)는 고증했다. 설요영은 허리 가는 미녀였던 것
같다. 양염(楊炎)의 「증(贈) 설요영 시(詩)」에 보면 가벼운 걸음
옥산(玉山)을 걷듯 먼지가 일지 않고 버들가지 같은 초요(楚腰) 봄이
시샘한다 했다. 초요는 지극히 가는 허리란 뜻이다.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허리 가는 여인을 사랑했기로 궁녀들이 밥을 줄여
날씬해지려다 굶어죽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전국책」에 보면
궁녀들이 부축하지 않고는 일어서질 못하고 일어서도 기대지 않고는
서있지 못했다는 초요다.

한나라 성제(成帝)의 사랑을 받았던 비연(飛燕)은 어찌나 몸이 가늘고
가냘펐던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다 한다. 거미줄만큼 가는 실로 짠
옷 아니면 지탱하지 못했고 산들바람에도 날려 양쪽에서 포장을 치고서도
부축해야 했다. 얼마나 소식이었던지 후세에 비연식(飛燕食)이란 말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왕년의 명배우였던 모나코의 그레이스 왕비도
비연식을 했는데 아침 점심에 그레이프 프루츠 한쪽과 달걀 반쪽에
저녁밥은 샐러드 큰술로 하나가 고작이었다 한다. 그렇게 먹고 살려면
무슨 왕비의 영화가 필요했는지 흥부의 아들들에게 물어보았으면 싶다.

미국의 서부개척시절에 프랜시스 하트라는 작가가 있었다. 그의 단편
가운데 날씬해지고 싶은 한 소녀의 처절한 최후를 그린 게 있다. 피크닉
갔다가 길을 잃은 소녀 파이니가 헤맨 끝에 산막을 찾아드는데, 하필
눈이 쏟아져 고립되고 만다. 산막에는 여섯 끼 먹을 양식이 비축돼
있었다. 파이니는 하루에 한 끼 먹을 분량의 절반씩 먹고 버티었다.
평소에 그토록 선망했던 초요에 만족하며 버텨냈다. 한데 양식이 다
떨어지도록 눈은 멎지 않았다. 구조대가 찾아들었을 때 파이니는 한손에
쥘 만큼 가늘어진 허리를 안고 죽어 있었다. 입술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ㅡ. 초요증후군이나 파이니증후군은 스스로를 자멸시키는
자업자살이지만 지금 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있는 중국제 약품에 의한
살인 다이어트는 자업타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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