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餘暇 學會
강직한 선비 최영경(崔永慶)이 진주에 은퇴해 사는데 유성룡(柳成龍)이
찾아보았다. 이때 최영경은 집에서 기르던 학 한 마리를 어깨에 얹고
나와 맞았다. 백마디 말보다 그 학이 주인의 심지를 대변해주었다.
이처럼 세속을 등지고 사는 선비들끼리 학계(鶴契)를 맺고 학 한 마리씩
길러 콘테스트를 하는데 아침 꽃 이슬로 학 볏을 매일 닦아주면 선홍빛이
더하고 시 읽는 소리를 많이 들은 학 눈일수록 오묘하다는 등
양학(養鶴)으로 누구의 학 볏이 보다 고운가, 누구의 학성(鶴聲)이 보다
멀리 떨치는가, 누구의 학 눈이 보다 멀리 보는가 등 열 가지를 겨룬다
하니 고상한 여가 이용이 아닐 수 없다. 한겨울에 나무 함지에 물을 담아
한데다 놓아두고 자면 얼음이 얼어 갖은 모양새의 빙화(氷花)를 이룬다.
이를 들고 모여 누구의 빙화가 보다 멋진가 견주는 빙화계(契)도 있었다.
정약용이 주축이 된 죽란시사(竹欄詩社)는 살구꽃 피면 한번 연꽃 피면
한번 국화꽃 피면 한번 매화꽃 피면 한번 명소에 모여 시를 짓는다.
이를테면 서대문 밖 서련지(西蓮池)에 연꽃이 만개하면 밤중에 그 속에
배를 타고 앉아 동이 트면서 꽃 필 때 나는 둔탁한 소리를 듣는
개화청(開花聽)은 풍류의 압권이 아닐 수 없다. 시종(詩鐘)이라 하여
천장에 노끈을 매어 그 끝에 동전을 달아 놓고 그 아래 유기 사발 하나
엎어 놓는다. 그 끈 중간에 향조각을 꽂아 놓고 불을 붙여 시의
대구(對句)를 짓게 한다. 향이 다 타 끈을 태워 동전이 유기 사발에
떨어져 종소리를 낼 때까지 짓지 못하면 실격이다. 정말 멋있다. 매월당
김시습은 배낭 속에 나무 다듬는 자귀를 넣고 다니다가 시상이 떠오르면
그 자귀로 나무 밑동을 깎아 거기에 시 한수 써놓고 떠나간다.
한양에는 사랑이나 정자를 떠돌며 반대 당파나 세도가들을 풍자하여
웃음을 팔고 다니는 익살꾼이 있었으며 그 명성 좇아 청중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다니기도 했다. 책비(冊婢)라 하여 마님 머리맡에
이야기책 읽어드리고 다니는 직업 여인이, 그리고 정자나무 아래
돌아다니는 소리꾼이 금쪽 같은 여가를 흥겹게 했다. 이 같은 여가
이용의 전통이 있는 나라에서 주5일제 근무의 실행과 더불어
여가문화학회가 발족한 데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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