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亡人 移民
남해의 낙도인 거문도(巨文島)에 영국 수병(水兵)의 무덤 세 개가 있다.
1885년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영국 군함 8척이 도웰
제독의 지휘 아래 거문도를 점거하는 동안 그 섬에서 죽은 병사들의
무덤이다. 함대가 철수할 때 이 무덤은 고스란히 두고 떠났으며 2차대전
후 묻힌 병사의 후손이 찾아왔는데도 초라한 나무 십자가 아래 꽃 한송이
놓고 간 것이 고작이었다. 죽으면 한국 사람들처럼 가족이나 고향,
고국과 끈끈한 맺어짐이 없이 그저 죽은 곳에 묻히면 그만인
서양사람이다.
파리 에펠탑 인근에 있는 폐병원( 兵院) 지하의 나폴레옹 무덤에 가장
열심히 들르는 것이 영국 관광객들이다. 그 이유를 물으면 나폴레옹이
정말로 죽었나 확인하고자 들른다는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한 대국의
황제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인 나폴레옹도 그가 죽은 유배지
세인트헬레나섬의 롱우드에 묻혔던 것을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 국민
틈을 흐르는 센 강가에 묻어달라」는 유언대로 하게 된 것은 묻힌 지
20년 후의 일이다.
그동안 잦았던 재일동포들의 고국방문단이 여객기 트랩을 내려올 때마다
유골상자를 메고 내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미 수십년 전에
작고한 육친이 뼈만이라도 고향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지켜 유골을
보존했다가 들고 온 것이다. 한국인과 서양인의 사후관(死後觀)은 이처럼
현격한 차이가 있다.
세상에서 죽어서도 가장 오래 사는 것이 한국사람이요, 늙어서 살고 싶은
나라를 굳이 선택하라면 한국을 택하겠다고 말한 것은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늙어서 그토록 우대받고 살다가
죽어서 3년 대상을 치를 때까지 삭망(朔望)으로 가족과 공식(共食)을
하고 3년 지나서는 해마다 기일(忌日) 말고도 정초·한식·단오·추석에
차례를 받고 공생을 한다. 오대조(五代祖)가 될 때까지 그렇게 자주
만나며 살다가 그 후에도 한 해에 춘추로 시제(時祭)에서 후손들과
만난다. 부모들로 하여금 이 사후 공생체(共生體)를 떠나살게 하고 싶지
않은 미국의 한국 이민들이 부모의 유골을 옮겨 묻는 망인 이민이
성행하고 있다는 현지보도를 접하고 보니 못말리는 한국인의 사후관을
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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