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검찰총장

bindol 2022. 11. 21. 07:40

[이규태 코너] 검찰총장

조선일보
입력 2002.07.15 19:03
 
 
 
 


중위(中尉)하면 초급장교의 계급 이름이지만 옛 한(漢)나라 때에는
범법을 다스리는 최고직위였으니 검찰총장격의 벼슬 이름이었다.
한무제(漢武帝) 때 그 중위 벼슬에 지엄했던 질도( 都)라는 이가 있었다.
경제(景帝) 때 태자로 책봉된 적이 있었던 임강왕(臨江王)이 살 집을
넓게 지으면서 범법했기로 질도에 의해 잡혀든 몸이 되었다. 임강왕은
아우인 집권황제 무제(武帝)에게 자신의 무죄를 석명하는 글을 쓰고자
붓과 주머니칼을 요구했으나 질도는 엄명을 내려 그것이 옥에 들지
못하게 했다. 임강왕은 친할머니인 두태후(竇太后)와 내통, 석명서를
써올리고 그 작은 칼로 자결을 했다. 태후의 분노로 질도는 한동안
벼슬을 떠나 있었으나 권력보다 법치를 소중하게 본 무제는 보다 높은
자리에 중용했다.

무제의 어머니 왕태후(王太后)는 충성스레 시중드는 한 의녀(醫女)에게
동기간 누군가 있으면 벼슬을 시켜주마 했다. 그렇게 해서 중위 벼슬까지
오른 의녀의 아우가 의종(義縱)이다. 법지키기를 엄하게 하여 언젠가 그
은공을 베푼 왕태후의 손자요, 무제의 조카인 수성군(修成君)이
이권(利權)에 개입해 잡혀들었는데도 갖은 청탁을 물리쳤고 그것이
임금의 눈에 들어 승진하고 있다. 왕자를 비롯, 왕족 외척의 죄를 다룰
때 밀어닥치게 마련인 세도의 청탁을 둔 역사적 교훈으로 거론돼 내린
질도와 의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왕자의 불법을 가차없이 차단하여 법정신의 상징으로
회자되는 인물이 있다. 성종 때 한성판윤(漢城判尹)이던 전림(田霖)이 그
분이다. 당시에는 삼권을 쥐고 있던 판윤으로 시중을 순찰하는데 법외로
집을 높고 넓게 짓고 있음을 보았다. 당시 성종의 왕자요, 연산군의
아우인 회산군(檜山君)의 집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성안을 돌아 몇
시 즈음에 다시 이 자리에 올 터이니 크고 넓은 것을 법대로 줄여놓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집주인을 잡아 가둘 것이다」했다. 돌아와 보니
기둥을 잘라 납작, 폭을 줄여 홀쭉 집이 돼 있었다. 왕권 만능의
왕조시대에도 왕자의 월권 범법에 이 정도로 삼엄했었다.

백성이 임금이라는 이 민주 대명천지에 중위 벼슬의 전직 검찰총장이
권력의 청탁에 말려 기소되고 퇴임 법무장관이 권력의 법치개입에
쓴소리를 남겨야 했던 것이 역사에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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