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미국 산불 기우제

bindol 2022. 11. 22. 05:20

[이규태 코너] 미국 산불 기우제

조선일보
입력 2002.07.12 20:01
 
 
 
 


맹렬한 산불에 위협받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에서는 인디언 간에 전해
내린 전통 기우제들이 재현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산불이
아파치족의 보호마을까지 번지자 인디언들이 성지에 모여 비 뿌리듯 물을
뿌리고 다니며 비를 부르는가 하면, 개구리를 담은 항아리를 치며 주문을
외우고, 아가씨들이 손잡고 돌며 음란한 춤을 추어 비를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주의하게 된 것은 미국 기우제의 방식이 한국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다. 우리 전통 기우제로 가장 흔한 것이
부녀자들이 강가에 모여 키에 물을 담아 나르게 하여 물 새는 것이 마치
장대비 내리듯 하게 하는 것이다. 공감주술(共感呪術)이라 하여 비슷한
것끼리는 서로 공감하여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원시적 사고방식에서
생겨난 기우제다.

나라 안이 몹시 가물면 궁중에서도 기우제를 지내는데 임금님의 침전
앞에 큰 항아리를 갖다 놓고 물을 담아 도롱뇽을 잡아넣는다. 그러고서
내의원(內 院)에 소속된 동남(童男) 20명에게 푸른 옷을 입혀 둘러
세우고 버들가지 들려 항아리를 치며 주문(呪文)을 외우게 했다.
「도롱뇽아 도롱뇽아/구름을 일구어/이슬을 토하여/비를 내리게
하라/그러하면 너를 살려줄 것이다」고ㅡ. 도롱뇽과 개구리 차이가 있을
뿐 인디언 기우제와 너무 흡사하다.

아가씨들이 손잡고 돌며 음란한 춤을 추는 것도 경주지방의 기우제와
너무 흡사하다. 날이 가물면 젊은 무당들로 하여금 버들가지로 만든 푸른
고깔을 머리에 씌우고 음무(淫舞)를 추게하는데 치마를 들추었다 놓았다,
저고리 자락을 펼락 말락 속살을 슬쩍슬쩍 들추며 추는 음탕한 춤이게
마련이다.

물가에 자라는 버들가지는 비를 부르는 주력이 있고, 음탕한 춤은 여성의
음기(陰氣) 발산으로 양기(陽氣)에 치인 음기에 활력을 주어 음기에
속하는 비를 부를 수 있다고 여긴 때문이다. 삼남 지방에서 날이 몹시
가물면 여인들로 하여금 산상에 올라가 방뇨를 시켰던 것도 같은 이치다.
원시적 사고방식인 공감주술이 공통분모로 작용하여 한·미 기우제가
같은 건지, 아시아와 미국 대륙이 연륙(連陸)돼 있을 때 알래스카 거쳐간
동북아시아 문화가 미국에서 그렇게 살아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태 코너] 풍선 효과  (0) 2022.11.22
[이규태 코너] 景德鎭  (0) 2022.11.22
[이규태 코너] 餘暇 學會  (0) 2022.11.21
[이규태 코너] 검찰총장  (0) 2022.11.21
[이규태 코너] 楚腰  (0) 2022.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