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景德鎭

bindol 2022. 11. 22. 05:45

[이규태 코너] 景德鎭

조선일보
입력 2002.07.11 20:19
 
 
 
 


인조 때 한양의 벼슬아치나 사대부 사이에 춘희자(春 子)라는
음란(淫亂) 조각 도자기가 꽤나 번져있었던 것 같다.
「공사견문록」이라는 문헌에 보면 국사를 의논하는 조정에 까지 남녀가
음희(淫 )하는 춘희자가 놓여있었으며, 인조가 이를 알고 조야(朝野)가
음란물을 좋아하는 것은 변란의 조짐이라 한탄하고 이를 치우도록 하고
있다. 이 춘희자는 중국에 사신길 갔던 사행들이 돌아올 때 상관들에게
바치는 선물로 상식화돼 있었으며, 하인을 일부러 춘희자의 원산지인
중국 강서성(江西省) 경덕진(景德鎭)까지 보내 무더기로 사왔던 것이다.

경덕진은 송나라 때 황실의 각종 그릇을 대기 위해 만든
어기창(御器敞)으로 청나라 광서제(光緖帝)를 마지막으로 황실 그릇
만드는 일을 그만 두었으나 근년에는 원세개(袁世凱) 대총통이 이곳에서
만들어 쓰더니 문화혁명 말기에 당대의 명공 40명을 이곳에 모아
모택동(毛澤東) 주석을 위해 500여개의 그릇을 만들어 바쳤던 것이다. 그
희소가치를 위해 같이 구운 여분의 도자기들을 파손처리하게 했으나 몰래
흘러나갔고, 모 주석 사망 후 그 전용의 그릇들도 흘러나가 수집가의
손에 들어갔으며 일습에 550만달러를 호가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경덕진이 청나라 옹정제(雍正帝) 때 폐쇄당하는 비운을 겪었는데 그
성쇠가 극적이다. 당시 경덕진의 여도공(女陶工)에 여사랑(呂四娘)이라는
아가씨가 있었다. 기량을 갈고 닦아 황제의 찻잔에 무늬 그리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이 자리는 아가씨가 노렸던 계획된 자리였다. 그녀는
광서제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목이 저자에 내걸려 일가 멸족을 당한
주자(朱子)학자 여유량(呂留良)의 손자요 여의중(呂毅中)의 딸이었다.
황제에게 복수를 작심하고 자금성의 궁녀로 들어가려 했으나 신원조회에
걸려 뜻을 못 이루자 황제가 입을 대는 그릇에 독을 묻힐 수 있는
경덕진에 여공으로 들어간 것이다. 여사랑은 두 개의 어용 찻잔 가에
꽃그림을 그릴 때 그 물감에 독을 섞었고, 그 그릇이 자금성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옹정제는 독살되었던 것이다.

역사도 유구한 그 경덕진 춘희자가 지금 베이징에서 포르노 수요를 타고
있다는 보도가 있더니, 경덕진의 마지막 국보급 도자기인 모택동 주석의
밥그릇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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