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失踪 戰士
사람이 죽으면 맨 먼저 지붕에 올라가 고인이 입었던 체취(體臭)스민
저고리를 흔들며 떠나가는 혼백을 불러들이는 초혼(招魂)을 한다.
이처럼 죽으면 육신에서 분리된 혼백이 이승과 저승의 중간 공간인
중공(中空)을 헤매는 것으로 알았다. 육신이 가족들에 의해 묻히고
제사가 지나면 영혼도 잠들 수 있으나 버려진 채 찾지 못하면 영혼은
영원히 중공을 울어 헤매며 그 원한이 불행을 몰아오는 것으로 알았다.
마을마다 동구밖 숲거리에 이끼낀 돌무더기를 볼 수가 있다.
서낭당이라고도 불리는 여단( 壇)이다. 전장에 나갔다가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거나 염병 등으로 객사한 사람의 방황하는 혼백을 불러들여
제사지내는 상설 제단이다. 이같은 영혼관 때문인지 시신(屍身)을
생신(生身) 이상으로 소중히 하는 문화가 발달했던 우리나라다. 외적의
침범으로 출정을 하게 되면 그 떠나는 전야에 아내는 남편의 등을 바늘로
쪼는 부병자자(赴兵刺字)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 글자나 그림을 쪼아
문신(文身)을 하고, 쪼면서 흘린 피를 닦은 피묻은 수건을 보존한다.
전장에서 죽으면 찾아가 남편을 확인하기 위한 문신이요 끝내 못 찾으면
피묻은 수건으로 중공에 방황하고 있을 영혼을 불러들여 진혼(鎭魂)하기
위해서다. 광해군 때 명나라의 요청으로 출병, 청나라 대군과 접전을
벌였던 만주땅 심하전쟁에서 부장(部將)이던 이유길(李有吉)은 입었던
옷을 찢어 「5월 5일에 죽다」고 써 애마의 등갈기에 매 고국 고향땅에
돌려보내고 전사했다. 영혼을 원귀(寃鬼)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영혼문화인 것이다.
현대 전쟁에서 아무리 전과가 크더라도 아군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면 그 전과는 반감한다는 전쟁논리가 있다. 왜냐하면 시신이
버려지면 싸우는 장병들이 그 버려진 시신에 자신의 미래를 투영, 사기가
떨어진다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미군은 하와이에 이 시신 추적
전문부대가 주둔, 몇 백년 전의 전장시신도 찾아내고만다는 지상목표
아래 활동하고 있다. 전사(戰士)의 시신을 둔 한국의 전통과 첨단전쟁
논리가 이러한데 서해교전에서 전사·실종한 전사의 시신은 아직껏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침몰된 함정 속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면
잠수탐색이라도 했어야 했다. 산화한 전사의 가족은 물론이지만 그더욱
살아있는 많은 전사를 위해서다.
'이규태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규태 코너] 地名의 왜색청소 (0) | 2022.11.22 |
|---|---|
| [이규태 코너] 八角 神宮 (0) | 2022.11.22 |
| [이규태 코너] 풍선 효과 (0) | 2022.11.22 |
| [이규태 코너] 景德鎭 (0) | 2022.11.22 |
| [이규태 코너] 미국 산불 기우제 (0) | 2022.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