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히딩크 신드롬
한국 선수들이 골을 터뜨렸을 때마다 달려가 히딩크 감독과 안고 안기어
볼 대기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박지성 선수가 황금 같은 골을 넣고
동료에 앞서 히딩크 감독에게 먼저 달려가 안긴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포옹을 둔 문화 차이를 감안하면 뭣인가 생각해볼 여지가 남는다.
한국인을 지배했던 유교사상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잡아주는 가르침이다.
그 사이 때문에 사람은 인간(人間)이다. 그렸던 어머니를 만났을 때
달려가 끌어안고 싶어도 벽에라도 막힌듯 멎고서 큰절을 하는 것이
한국인이다. 스승의 그늘은 한발 물러서서 밟지 않는다지 않던가.
히딩크가 아버지 같고 스승인 것만으로도 그러한데 하물며 외국인임에랴.
단일민족으로 나라문을 닫고 살아온 우리 민족의 자질로는 외국인과의
거리를 들 수 있다. 개가 그 나라 민족성을 닮는다는 것은 과학이다.
외국인 선교사들이 숨어서 선교를 할 때 도포에 깊은 갓을 눌러쓰고
변장하고 암행했지만 번번이 들키고 만 것은 개들이 짖어댔기
때문이었다. 개마저도 거리를 잡는 외국인인데 히딩크의 포옹에서 징발된
그 거리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세계 열강을 차례로 물리친 비결을 물었을 때 히딩크는 선수들이 순박해
말을 잘 들었다는 것을 들었다. 감독 경력이 많은 그의 비교체험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은 히딩크가 기득권이나 인지도·자존심·인맥 등 선수
선발에 내재하게 마련인 악지를 빼고 순수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는 것이
된다. 그는 선수들을 나이스 가이스라고 불렀다. 가이스는 제 자식이
귀여워 부를 때 놈자를 붙이듯 지극히 친밀하지 않고는 부를 수 없는
애칭이다. 인격을 무시하게 마련인 강훈 때도 선수들을 반드시 이름으로
불렀으며 부모와 같은 배려와 격의를 없애는 조크와 유머로 선수간에
「할배」라는 애칭을 받았다.
「뭣이 한국선수들을 저렇게 미쳐 뛰게 하는지 모르겠다. 김치도
불고기도 아닌 다른 뭣이 있다」 「보장된 것이 없는데 저토록 몸을
아끼지 않는 데 이해가 가지 않는다」 등등 그동안 외국신문들이 나타낸
의문들에서도 드러난 그 「뭣」이 무엇일까. 유럽축구는 체력이요,
남미축구는 기량으로 세계를 지배해 왔다. 한데 이번 월드컵에서 그 한
시대를 접었다. 그 시대를 접은 한국팀은 체력도 기량도 아니요,
그렇다고 투지만도 아니다. 이해타산 않고 분골쇄신하게 한 할배 같은
친화(親和)다 친화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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