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빨강 考

bindol 2022. 11. 23. 05:48

[이규태 코너] 빨강 考

조선일보
입력 2002.06.18 18:46
 
 

라파엘로의 「레오 10세와 두 추기경」이라는 명화를 보면 교황의
옷색이나 의자 테이블 보에 이르기까지 붉다. 추기경을 칼디늘이라
하는데 붉은 복색에서 비롯된 호칭이다. 곧 빨강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상징으로 성직(聖職)의 색이다. 비단 성직뿐
아니라 로마의 황제나 귀족들의 복색은 빨강이며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붉은 천을 매매하면 사형에 처했으니 특정계급의 독점색이기도 했다.

빨강은 피의 색일 뿐 아니라 불의 색이기도 하다. 한자의 적(赤)은
「大+火」의 모둠글씨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불은 귀신이나 악마를
쫓는다. 마를 쫓기 위해 붉은 흙을 입술에 칠했던 것이 립스틱의 뿌리다.
옛 어머니들이 염병이 번지면 붉은 바지를 지어 입었음도 그 때문이요,
동지에 붉은 팥죽을 집안 도처에 뿌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성역(聖域)
표시인 홍살문이 붉은 것도 귀신을 공갈하기 위함이요, 금줄에 붉은
고추를 끼우는 것도 매워서가 아니라 붉기 때문이다. 신부에게 붉은
치마를 입히는 것은 호사다마라 악마에 대처하기 위함이요, 젊은 여인의
저고리 끝동이 진한 붉은 색인 것도 그를 통해 들 마를 예방코자 함이다.
한말에 서해 신지도에 프랑스 함대가 난파 선원들이 상륙하자 섬사람들은
숯불을 벌겋게 피워 들고 접근했었다. 귀신으로 여기고 이를 쫓는
푸닥거리였던 것이다.

불과 피는 격정(激情)을 선동하는지라 전쟁에 빨강이 이용된다는 것은
합리적이다. 바이킹의 도전 신호로 빨강 깃발을 올린 것이며 중세
병사들의 갑옷 투구 방패가 붉은 것도 그 때문이다. 스탕달의 「적과
흑」에서 적은 병사를 뜻하며 영국 육군의 복색이 붉었던 것도 그에서
비롯됐다. 프랑스 혁명 때 극단적 공화주의자인 자코뱅당의 혁명색이
되어 붉은 군대 붉은 광장은 그때부터 있었다. 스페인 프랑코가 「푸른
셔츠」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가「검은 셔츠」를, 히틀러의 나치스가
「갈색 셔츠」로 획일화했듯이 레닌의 볼셰비키가 붉은 색으로 획일화한
것은 빨강이 격정을 필요로 하는 혁명의 색이기 때문이다. 공산국가들이
빨강을 이념색으로 삼았고 비공산국가들에서 빨강을 금기시한 것은 그
때문이다. 운동회 때 홍백전을 청백전으로 바꾸었을 만큼 빨강
알레르기가 심했던 우리나라에서 붉은 악마가 이념색으로부터 빨강을
탈색시켰다할 것이다.